[천자춘추] 사법신뢰 해치는 ‘대법원헌재 갈등’ 해결을

당신에게 세금 707억원이 부과되었다고 치자. 깜짝 놀란 당신은 전문가를 찾아가 세금부과가 정당한지 물었다. “조세는 국민의 재산권 보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대한민국헌법은 조세법률주의를 명시하고(제59조) 국가가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할 때는 반드시 국회가 만든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제38조)고 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경우 법률이 바뀌는 바람에 애매하네요. 법원 판단을 받아보시죠.”

법원을 찾아가 3심을 모두 거치는 데 3년이 걸렸고 세금 부과가 적법하다는 최종 판결을 받았다. 근거법률이 이상해 헌법재판소를 찾았다. 또다시 3년가량이 흘렀다. 헌재는 대법원과는 달리 법률에 707억원 세금의 부과 근거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헌재결정문을 들고 다시금 법원 문을 두드린 당신 “헌재에서 세금부과처분은 잘못되었다고 하네요. 빨리 취소결정 해주세요.” “헌재에서 내린 결정은 한정위헌결정이므로 기속력이 없습니다.” 즉 법원은 처분 취소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6년 동안 얻은 결론은 ‘707억 원 + 6년 동안의 가산세 부과’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헌법기관인 대법원과 헌재가 서로 다른 결론을 제시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뿐. 현재 GS칼텍스가 처한 상황이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6월7일 GS칼텍스에 대한 707억원 법인세부과처분의 근거법률을 다투는 헌법소원에서 대법원과는 반대로 근거법률이 없다고 했다. 당사자로서는 과세관청이 스스로 나서서 세금을 안 내도 된다는 선처를 해주길 기대할 따름이다.

1997년 이른바 ‘이길범씨 사건’에서는 이와 같은 우회로를 통해 당사자가 권리구제를 받고 양 기관의 정면충돌을 피했다. 한편, ‘긴급조치’와 관련하여 ‘위헌’이라는 결론은 같아도 대법원은 위 조치가 ‘법률이 아니라는 이유로’, 헌재는 ‘법률이지만 위헌’이라는 식으로 양 기관이 서로 다른 근거를 제시하여 국민의 혼란을 초래한 경우도 있다. 분쟁의 종국적인 해결과 국민의 기본권 실현을 위해 협력해야 할 대법원과 헌재가 날 선 대립각을 세우는 사이 국민은 방치된 채 사법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법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대한변호사협회는 양 기관의 갈등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양 기관을 통합하거나 또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관점에서 병존을 인정하되 충돌 방지책을 갖추어야 한다. 국민의 사법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견제자로서 대한변협의 역할이 중요한 때이다. 

 

위철환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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