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이 티 없이 맑고 바르게,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제반 환경을 조성하고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키워주고자 제정한 날이다. 그러나 그 시작이었던 1923년 5월 1일은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하는 운동의 일환이기도하였다.
어버이날은 1956년 어머니날로 시작해 1973년 어버이날로 개칭됐다. 효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계승 발전시키며 건강한 가정과 장한 어버이를 발굴하여 널리 모범이 되도록 함에 목적을 두고 있다.
성년의날은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첫째 관문인 관례(冠禮)에 해당하는 것으로 1973년 제정되었다. 성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책임질 자부심과 사명감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부의날은 건전한 가족문화의 정착과 가족해체를 예방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2007년 제정되었다.
가정이 건강해야 고령화와 청소년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정되었다. 가정의 달인 5월,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를 담아 21일을 기념일로 하고 있다. 부부의날은 1995년 어린이날 “우리 엄마·아빠가 함께 사는 게 소원이에요”라는 한 어린이의 TV 인터뷰가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정의 달에 노인이 없다.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은 나이로 어린이, 성년, 노인으로, 역할로는 어버이와 부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엄연히 기념일로서 노인의날이 제정되었음에도 왜 가정의 달에는 포함되지 못한 것일까?
내게는 어머니와의 소중한 추억이 있다. 30년 전 어린이날 어머니께서 바람을 쐬러가자 하셨다. 돌아보니 쉰의 나이가 되도록 어린이날에 대한 추억은 그 해가 가장 소중한 날로 기억된다.
1983년 어린이날 어머니께서 내게 선물하신 것은 소주 2병과 통닭 한 마리였다. 지금도 그 때 그날을 회상하면 웃음이 난다. 어머니는 어린시절의 내게 한 번도 어린이날을 기념해주지 못하신 미안함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성년이었던 내가 어린이날 어머니가 주신 소주로 낮술을 거나하게 마시는 추억을 챙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두고 보니 부모님보다 자식이 더 애틋하다. 한 밤 중 부모님이 편찮다 하실 때 물수건을 갈아드리며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어린 자식이 아프다고 하니 한 밤중에 먹을 갈고 의미도 모르는 반야심경을 썼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으로 성장하였으면서도 나는 참 못된 자식이다. 왜 자식임을 잊고 아비인 것만을 기억하는 것일까? 어느덧 어머니는 망백(望百)을 지나 백수(白壽)를 앞두고 계시다. 오늘일은 잊으시고 옛일만을 기억하신다. 기쁠 땐 어김없이 눈물을 보이신다.
가정의 달, 유일하게 어린이날만이 공휴일이다. 공휴일이냐 아니냐가 가정 내 구성원의 중요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공휴일인 어린이날은 중요한 날이고 어버이날, 성년의날, 부부의날이 중요하지 않은 날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인의날이 가정의 달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하여 노인이 가정 내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기념일이 휴일이든 아니든 대상을 더욱 또렷이 생각하고 돌아보는 의미로 지정이 된 것이라면 오늘날 노인의 날도 5월, 가정의 달에 포함을 시키는 것은 어떠할까? 가족의 중요한 구성원의 하나가 노인임을 상기시키는 의미에서 말이다.
김용국 문학박사 ㈔동아시아전통 문화연구원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