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집의 편견

제가 사는 아파트는 국민임대아파트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국민임대아파트란 일정 소득 이하의 서민들만 들어가 살 수 있는 아파트를 말합니다. 가장 큰 평수라고 해봐야 24평입니다. 매달 일정액의 임대료를 내야한다는 건 있지만 보증금도 싸고 주변 여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곳에 저와 아내 그리고 아들 녀석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대아파트는 열등한 사람들이나 사는 그런 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더군요.

지난 봄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한 벼룩시장이 열린 자리였습니다. 그 시장 마당에 추레한 몰골의 한 노파가 등짐을 지고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그곳에 갔습니다. 아이가 자라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않는 오래된 장난감이나 작아져버린 아이 옷, 발이 커서 더 이상 신을 수 없는 신발 등을 들고 나갔지요. 돗자리를 깔고 물건을 진열했습니다. 물론 멀지 않은 곳에 노파도 등짐에서 꺼낸 물건들을 보기 좋게 진열했습니다.

노파의 물건은 정갈했습니다. 군대에서 입는 보온 상의(깔깔이), 낡고 바란 버선 몇 켤레, 돋보기, 역시 색이 바란 꽃무늬 나막신 그리고 산에서 캐왔을 쑥과 나물, 가늘게 자른 후 말린 무 등을 늘어놓았지요. 벼룩시장에서 그런 것도 팔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참 사람들이 오가며 시장판에서처럼 흥정이 오가고 그랬습니다. 저도 아이를 도와 물건 흥정도 도와주고 있는데 귀 아픈 소리가 들리더군요.

“……저, 할머니. 요 앞에 임대아파트 산대.” “그깟, 나물. 아무튼 임대 사는 것들 다 그래요.”

두 아주머니가 노파를 일별한 후 종종걸음을 치며 그런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그 두 여자 뒤에 아이들이 졸졸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내막은 간단했습니다. 아이들이 진열해 놓은 쑥이며 나물들을 할머니가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엉망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일부는 사람들 발에 밟히고 일부는 아이들이 장난 삼아 던지고 그랬던 겁니다. 마침 할머니가 돌아왔고 아이들에게 야단을 쳤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아이 엄마들이 나서서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지폐 몇 장을 휙 던지듯 주고 자리를 피하는 중이었던 겁니다.

미안하다고나 하지 말걸. 할머니는 창피했던지 바로 짐을 싸 자리를 뜨더군요. 두 엄마의 말은,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심하게 장난을 쳐도 참고 견뎌야한다는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저런 편견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더군요.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편견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엄마들도 가지고 있더군요.

한번은 우리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주소가 다른 곳으로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유는 아이를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보낼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수준이나 뭐 그런 게 쫌, 그렇잖아요.”

‘뭐가 쫌 그런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엄마들마저 스스로를 그렇게 자신을 낮추고 있었던 겁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편견입니까. 그런 뉴스도 보았습니다. 임대아파트와 민영아파트 사이에 없던 담을 세운 동네가 있다는 말을요.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민영아파트 앞길로 오가며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다는 게 그 명분이었습니다.

이런 어른들에게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싶습니다. 아파트의 생김새나 평수에 따라 인간의 질이 다르다고 가르칠 건가요. 그런 어이없는 편견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금방 배웁니다.

‘임대아파트 것들!’.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은 물론 모르는 세계에 대해 모두 아는 것처럼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편견일 겁니다. 임대아파트는 지질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전 민 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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