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오빠

구구단을 못 외워 혼나는 통에 오빠가 들어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잠들은 척했던 시절이 있었다. 늦둥이 막내인지라 당시 대학생이던 오빠와는 여느 가족의 이모조카 사이만큼 벌어진다. 저벅저벅 공포의 발소리를 내면서 집안으로 들어온 오빠는 씻는 것도 뒤로 미루고 숙제 검사부터 했고 위풍당당한 기세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곧바로 효력을 발휘하는 법이었다.

그러던 오빠가 계속되는 사업의 모진 굴곡으로 지난달 귀농을 준비한다며 경상도 어디께로 떠났다. 워낙 흙 일구는 일을 좋아하는지라 정원의 나무와 풀, 마당 한편에 마련한 과실과 채소텃밭까지 살뜰하게 가꾸었기에 농사가 낯설진 않았던가 보다. 60생을 함께한 노모를 두고 떠나는 마음이 무거운지 보일러, 방범창, 현관문을 꼼꼼하게 살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전화 자주 드린다는 말이 노모께 인사치레로 들리지는 않길 바랐다.

오빠가 떠난 후 아직도 혼자 계신 집이 익숙하지 않아 힘겨워하시는 엄마를 찾아뵈었다. 달랑 냉잇국에 밑반찬만 올린 밥상 보며 생선 한 마리 튀겨 올릴 새도 없이 연락 안 하고 들이닥친 딸이 야속하기만 하다며 연신 눈을 흘기시면서도 바리바리 김치와 반찬들을 싸주신다. 

냉장고를 들어내실 듯 챙기고 계시는 모습 보며 어디에선가 읽었던 적이 있던 글이 엄마 등과 오버랩 된다. 부모는 모두 거짓말쟁이이며 그중 최고 순위의 거짓말은 “바쁜데 오지마”와 “아픈데 없다”라는. 딸 배웅 나서시며 명아주 지팡이 의지해 노화된 걸음 옮기시는 모습에 코끝이 아리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전화하시면 첫 마디가 “바쁘지?”라고 하신다. 그것도 일하는데 방해될까봐 몇 번씩 망설이다 하셨을 텐데…. 고집불통 못된 딸은 몇 마디 대충 오가고 번개처럼 끊어버려 귀가 어두우셔 다 알아듣지도 못하시고 알아들으신 채하신다.

5월, 가정의 달이다. 퍼주고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젖줄, 그 힘의 원천으로 거친 세상 버티고 서있으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은 맘 깊이 묻어놓기만 했다. 어버이날에만 반짝하는 효도가 아니라 자식 바쁠까봐 전화조차 맘대로 못하시는 엄마께 “밥 거르지 않고 잘 먹고 다닌다”고 천천히 또박또박 자주 알려 드려야겠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누군가가 당신 집 대문을 막고 주차한 이에게 “발을 머리에 이고 다니란 말이냐?”며 온 동네 쩌렁쩌렁 울리도록 호통하시던 기개가 그립다.

이미숙 (사)한국미디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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