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이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 말은 늘 농촌인 내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한적한 전원생활로 보이는 농촌의 순수함 속으로 한 발만 들여놓으면 곧바로 저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농군이 부지런하다는 말은 오해다. 그들이 씨를 뿌리고 나면 씨앗들은 어김없이 싹을 틔우게 되는데, 농군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씨앗들의 시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비료를 줄 시기가 오고, 필요에 따라 농약을 뿌리고, 잡초가 올라오면 제거해야 한다.
그들의 하루는 자발적이라기보다 자연의 시간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농촌인 내 고향이 싫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강제성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 오는 건 왜일까.
내 고향마을에는 이제 ‘고덕국제도시’가 들어서게 되었고, 원주민인 우리는 떠나야 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 담장에 낙서하면서 한글을 배우던 곳, 학교를 다니며 도회지를 떠돌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와 정착했던 내 정서적 자궁인 이곳, 칠십 평생 해온 농사일 때문에 주민등록증 갱신할 때 지문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던 아버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기 싫어 한숨 쉬며 지내는 곳, 지도위에서 곧 사라질 내 고향….
일주일 전, 나는 고향의 봄을 사진에 담았다. ‘바라보기 사진가모임’에서 사라지는 고덕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계신 덕에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원인 이은숙씨는 손수 만든 수많은 보따리를 가져와서 고향을 떠나는 주민들이 보따리를 싸는 심정을 정성껏 표현했다.
셔터를 누르며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움마저도 꼭꼭 눌러야 했다. 빈집의 서까래는 이미 내려앉았고, 백 년은 족히 반질거리게 닦았을 마루 위에는 뽀얀 먼지가 켜켜이 앉아 있었다. 마을을 지키던 사당과 오래된 저 고목도 이제 국제도시의 건설 아래 스러질 것이다.
‘국가’에서 하는 일이니 저항하지 않는 게 국민의 도리다. 그러나 이런 신도시의 건설이 어떤 기관의 배를 불리는 영리 목적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따라서 이곳의 원주민들이 대책 없이 이삿짐을 싸지 않기를, 혹여 거리로 내몰려서 국가를 원망하며 기로에 서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린다.
그래서 새로이 태어날 ‘고덕국제도시’가 세계평화에 기여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성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기를, 고향을 등지는 원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한 지 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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