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아래로부터 의견 수렴하기

최근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모든 정책이나 사업결정에 주민참여는 기본적인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대규모의 도시계획 시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은 필수사항이 됐다.

도시기본계획, 여성친화도시, 고령친화도시 조성 등 여러 가지 종류의 도시계획 마련에 있어 관 주도의 위에서 아래로(top-down) 추진방식보다는 시민들의 욕구를 담아낼 수 있는 방식(bottom-up)이 활용된다. 이는 도시계획정책이나 사업의 질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민원도 감소하며 이로 인한 행정력 낭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지자체에서는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홈페이지를 통해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공청회나 주민설명회를 열고, 모니터링단이나 서포터즈를 운영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필자는 몇 년 전 경기도의 A시를 대상으로 고령친화도시 관련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지역에서 봉사활동하고 있는 민간단체의 회원 중 고령자인 30명을 현장조사 요원으로 선발하여 관련교육을 실시하고 약 2주간 도시 곳곳을 직접 걸어다니면서 점검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 점검표에는 양적인 점수도 매길 수 있고 직접 기술도 할 수 있게 했다. 현장조사 요원들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현장점검을 직접 나서고, 오후 2~5시 조별로 모여 오전에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조사지를 작성하고 사진자료를 첨부하는 등 문서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루 일정을 짰다.

2주가 지나서 회수한 점검표는 기대 이상이었다. 전문가의 현황분석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 지역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지역의 안전성과 편리성에 대한 실태를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필자는 결과를 토대로 보다 실효성 있는 고령친화도시 수립 관련 정책제언을 할 수 있었다.

현장조사가 끝난 후 요원 몇몇 분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처음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이 아르바이트거리 정도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무심코 지나치던 우리 동네의 거리와 차도를 이제는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노라고 말이다. 아울러 내가 사는 우리 동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고도 하였다.

관이 주도하여 일방적으로 이끌어가는 정책 및 사업운영 방식에 비해 주민들의 의견을 아래로부터 수렴하여 진행하는 정책수립 방식은 시간이 더 걸리고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궁극에는 민관이 모두 만족할 수 있고 따라서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혜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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