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운전할 때 모습이 삶의 자세 닮았다면

운전을 할 때는 여섯 대의 차량을 동시에 운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운전하는 차량과 앞차 두 대, 그리고 양쪽 옆의 차량 두 대와 내 뒤를 따라오는 차까지 여섯 대를 말한다. 내 앞의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바로 앞차의 유리창을 통해 붉은 브레이크 등이 보인다. 그 순간 내 발도 브레이크 페달 위로 올라가야만, 나를 따라오는 뒤차로부터의 방어운전이 가능해진다. 앞의 앞차까지 봐야 하는 이유다.

이 ‘세상’이라는 도로를 달리면서 오로지 내 차 한 대만 운전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가진 적은 없는지 문득 나를 돌아본다. 바로 옆을 달리는 차량 두 대를 의식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내 앞뒤의 차량 또한 너무나 중요한 길 위의 동료로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린다.

오래전부터 나는 그 각각의 차량이 우리들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차들이 내게는 하나의 인격체로 보이는 것이다.

어떤 차(사람)는 덩치만 크고 융통성 없어 보인다. 앞으로 조금만 움직여주면 뒤에 선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막은 채 비켜주질 않는다. 어떤 차(사람)는 아예 도로법규를 위반하면서 내달리다가 사고를 일으키고는 교묘히 법망 안으로 숨어든다.

또 예고도 없이(방향등도 켜지 않고) 끼어들어 사람을 놀래키는 얄미운 차(사람)가 있는가 하면,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앞차의 꽁무니에 바싹 붙어서 으르렁대는 차(사람)도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좋은 관계를 신선하게 오래 유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조바심에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달려드는 것은 열정도 아닌, 한낱 욕심일 뿐이다.

어느 겨울 늦은 밤, 지방에서 올라오던 길이었다. 고속도로가 군데군데 빙판이었다. 그리고 터널을 통과하기 1㎞ 전부터 완전한 빙판길이 시작되었다. 내 앞뒤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들 중에서 한 대라도 지금의 속도를 벗어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나는 앞뒤 차들을 흘깃거리며 가던 속력에서 변화를 주지 않고 계속 같은 속도를 유지하느라 기를 쓰고 있었다. 그렇게 터널로 들어선 순간, 진한 감동으로 코끝이 매워 오는 것을 느꼈다. 일렬로 늘어선 그 수많은 차들이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은 속도와 똑같은 간격을 유지하면서 빙판인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장엄한 순간이었다.

한 지 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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