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거리의 밥

어느 시절이나 대학을 어렵게 다니는 사람들은 있을 겁니다. 요즘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니 요즘은 학생들이 대학 다니기를 더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대학 등록금이 무서운 수준이라 그럴 겁니다. 사실 언제나 대학 등록금은 집의 기둥을 빼먹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집에 기둥이 없는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거나 아니면 아르바이트 등을 해서 학비를 충당해야만 했지요. 저 역시 대학 등록금으로 갖다 바칠 기둥이 없었던 터라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대학을 다니다 쉬다 할 수밖에 없었지요.

대학에 입학하던 그 첫해에는 등록금은 고사하고 하룻밤 등 붙일 숙소조차 없었지요. 가방 두 개를 끌고 다니며 하루는 이 집에서 또 하루는 저 집에서 빌붙어 잠을 청하고는 했습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거리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잠을 자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별로 서럽지 않았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타자기가 있었고 책 읽을 수 있는 눈과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지요. 어느 날 문득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노숙자로 살던 한 여자 아이였는데 하버드 대학교의 대학생이 되었다는 기사였지요. 카디자 윌리엄스라는 흑인 여성이었습니다. 엄마도 어린 나이에 윌리엄스를 낳았더군요. 갈 곳이 없어 노숙자 쉼터나 거리에서 생활했던 엄마와 소녀였습니다. 그나마 윌리엄스의 엄마는 자신의 딸이 자신처럼 노숙자로 남기를 바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딸이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졸업을 시키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하고 아이가 학교에 갈 때면 거리에서 입었던 옷을 벗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혀 학교에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는 잘 압니다. 윌리엄스나 그녀의 엄마처럼 긴 세월 거리에서 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짧지 않게 경험했던 시간들 덕에 모녀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이 되더군요. 아침에 일어나면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아 공중화장실의 세면대를 이용해야 하고 먹을 것 또한 여의치 않아 무료 급식소를 찾아가야만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를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저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비나 눈이라도 오면 낭팹니다. 그럴 땐 정말 난감합니다. 안면에 철판을 깔고 동기들의 자취방 방문을 두드립니다. 옷이나 가방 따위가 비나 눈에 젖지 않게 하기 위해 제 가방에는 항상 우산과 우비가 들어 있었지요. 하룻밤 신세 지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빨래까지 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차라리 방학 때는 좀 낫습니다. 공사장의 직영 인부로 들어가면 숙소와 밥이 해결되고 돈까지 벌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2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카디자 윌리엄스는 20년을 그렇게 살아온 겁니다. 그녀와 그녀의 엄마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녀의 인내와 노력 그리고 버리지 않고 키워 온 꿈이 기특하고 가상했습니다.

요즘은 개천에서 용이 안 나오는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교육에 있어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정착되어 가면서 집안에 여유가 있지 않으면 좋은 대학가기도 힘들고 대학에 가서도 대학 공부에만 전념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이 부조리함을 카디자 윌리엄스가 훌륭하게 뒤집어엎었지요. 가진 게 없으면 용이 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세상의 생각을 보기 좋게 녹다운 시켰던 겁니다. 그녀는 거리에서 자랐어도 세계 최고의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누구나 가능하다는 사실도.

전 민 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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