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동감’ 보다는 ‘공감’을

동감(Sympathy)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나와 같은 감정이거나 생각이면 가능하므로,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공감(Empathy)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감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와 같은 견해가 아니더라도, 상대의 말과 느낌, 공포, 흥분, 분노 등의 감정에 귀 기울이고 감정이입을 해주는 노력을 해야만 가능하다. 상대의 말을 자르지 않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모두를 긍정해 주라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겪은 삶의 경험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비폭력 대화법’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면서 가장 많이 공들였던 부분이 ‘공감’이었다. 나 또한 세상으로부터 공감 받고 싶은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이며, 말의 중요성을 절실히 여기는 까닭이다.

특급호텔을 가면 로비에 중후한 책상이 놓여 있는데, 그곳에는 항상 컴플레인 담당자가 앉아 있다.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에게 그들이 하는 일은 거의 무조건 들어주는 일이다.

그러면 고객은 불만사항이 곧 시정이 되지 않더라도 밝은 얼굴로 일어난다. 자신이 공감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 고객이 항의하는 도중에 말을 자르고서 호텔 측의 입장을 설명하려 한다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건 시간문제다. 화가 난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상대를 가르치려 드는 건 무모한 짓이다.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도 공감이다. 사적인 관계의 사람 앞에서는 말문이 막히던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털어놓게 된다. 그때에도 의사 분은 대개 들어준다. 약을 처방해주기도 하지만. 이때 환자는 집에 돌아가서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오랜만에 공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 지인 중에는 TV도 자주 출연하는 유명한 분이 있다. TV에서는 좋은 말을 참 잘하시는데, 실제로는 대화법에 약하신 분이다. 당신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는데도, 두 문장 이상을 듣지(참지) 못하고 말을 잘라 버린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단답형으로 대답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분과의 대화를 피하게 되었다.

우리는 상대에 대해 공감하기보다는, 성급히 충고하거나, 자기의 입장이나 느낌을 설명하려는 경우가 많다. ‘마샬 로젠버그’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공감은 자신의 존재를 비우고, 나의 존재로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다.”

한 지 수 소설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