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최성열 대한레슬링협회장ㆍ정지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

‘올림픽 퇴출’ 있을수 없는일…‘부활’ 위해 정부ㆍ국제연맹 모두 나서야

지난 2월 12일 밤(한국시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오는 2020년 하계 올림픽부터 고대올림픽과 태동을 함께한 레슬링을 25개 핵심 종목(Core Sports)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 한 것이다.

당초 국기인 태권도와 근대5종, 배드민턴, 탁구 등 일부 종목이 퇴출 후보로 거론됐던 터여서 갑작스린 IOC 집행위원회의 ‘레슬링 퇴출결정’ 소식에 국내ㆍ외 레슬링계는 그야말로 ‘멘붕’이 아닐 수 없었다. 올림픽 정신과 가장 잘 들어맞는 종목이라 여기며 잔류를 굳게 믿었던 터라 충격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특히, 레슬링은 대한민국 건국 후 첫 금메달을 획득했을 뿐 아니라,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13, 은메달 11, 동메달 11개를 따낸 대표적인 효자종목이어서 레슬링계는 물론, 국내 체육계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선수와 지도자들은 레슬링의 올림픽 정식 종목에 대한 부활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국내 레슬링계의 기대감을 반영하듯, 지난 22일 그레코로만형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이 열린 태능선수촌 레슬링 훈련장은 다소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선수들의 모습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감이 감돌았다.

절망감 속에서도 희망의 눈빛이 가득 넘쳐나는 태능선수촌 레슬링 훈련장에서 대한레슬링연맹을 이끌고 있는 최성열(53ㆍ기륭전자 회장) 회장과 경기도가 배출한 2004년 아테네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0㎏급 금메달리스트인 정지현(30ㆍ삼성생명) 선수를 만나봤다.

Q.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오는 2020년 하계올림픽부터 레슬링 종목을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한국레슬링계를 이끄는 수장으로 취임한 직후 이 같은 상황을 접한 심경은 어떠했나.

A. (최 회장) 대한레슬링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해 한 달간 축하 인사를 받다가, 최근 한달간은 계속 위로 전화만을 받고 있다. ‘참담하다’는 말 이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무겁고 의욕도 나지 않는다.

내가 이 정도인데 평생을 레슬링에 바쳐온 레슬링인들과 레슬링에 미래를 걸고 있는 선수들의 심경은 오죽하겠는가. 나아가야 할 목표가 사라진다는 것 만큼 슬프고 절망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레슬링에 미래를 걸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크다. 한국 레슬링의 수장으로서 이럴때 일수록 정신을 다잡아야겠다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Q.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이자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고참 선수로서 상심이 클텐데.

A. (정지현) 퇴출 결정이 된 당일 선수촌 숙소에 있다가 후배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아 농담인줄 알았다. 아무런 도구 없이 맨몸으로 힘과 기술을 겨루는 레슬링이야말로 ‘올림픽의 꽃’이라고 자부해왔기에 충격이 정말 컸다.

솔직히 아직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납득이 잘 안된다. 연습에 집중도 잘 안되고, 그저 멍한 기분이다. 그야말로 ‘멘붕’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것 같다. 하지만,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올림픽 정신에 가장 잘 들어맞는 레슬링 종목이 올림픽에서 퇴출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훈련에 임하고 있다.

Q. 레슬링의 퇴출 결정 이후 미국과 러시아 등 레슬링 강국들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대한레슬링협회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A. (최 회장) 현재 미국과 러시아, 일본 등 다른 국가에서는 정부가 나서 IOC를 압박하는 등의 정부 차원 대책들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레슬링 메달리스트들이 메달을 반납하고 나서는 등 전 세계 레슬링인들도 뜻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 우리도 현재 레슬링 퇴출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해 20만명 정도의 서명을 받은 상태다.

또 레슬링인들의 결연한 의지를 알리기 위해 지난 14일부터 3일간 국구대표팀이 안면도 해병대 캠프에 입소해 극기훈련을 했다. 오는 4월 초에는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레슬링 퇴출 반대 결의대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절망적인 상황일수록 레슬링인들이 뜻을 하나로 모아 결연한 의지를 IOC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결의대회를 개최한 뒤 100만인 서명부와 해병대 캠프 영상을 IOC에 보내 레슬링인들의 뜻을 전달할 계획이다.

Q. 한국 정부 차원의 움직임은 크게 없는 분위기인데.

A. (최 회장) 사실 그 부분이 정말 서운하다. 전 세계적인 사안인만큼 한국 정부가 나선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태권도의 퇴출을 막았다는데 안주하는 분위기까지 있는 것 같다.

레슬링이 어떤 종목인가. 한국이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종목아닌가. 건국 후 최초의 금메달이었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의 양정모 금메달에서부터 지난해 런던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6kg급의 김현우 금메달에 이르기까지 올림픽에서 무려 35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방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효자종목인 레슬링 지키기에 적극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Q. 해병대 캠프에 직접 참가하고 선수단을 대표해 결의문도 낭독했는데, 당시 심정은 어땠나.

A. (정지현) 개인적으로는 4번째 해병대 캠프 참가였는데 아무래도 기분이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해병대 훈련이 태능선수촌보다 더 힘든것은 아니지만, 정신을 다잡는 데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힘든 시기일수록 정신줄을 놓치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참인 내가 흔들리면 나를 바라보고 있는 후배들은 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고참으로써 후배들이 흔들리지 않고 훈련에 매진할 수 있도록 선배의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Q. 레슬링협회 수장으로써 ‘경기가 재미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최 회장) 사실 ‘재미가 없다’는 지적에 어느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부분이 레슬링 퇴출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레슬링 퇴출 결정은 분명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이뤄진 부분이 크다.

재미가 없는 부분은 공격적인 선수에게 어드벤티지를 주는 등의 룰 변경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국제레슬링연맹(FILA)을 중심으로 레슬링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Q. 레슬링의 올림픽 종목 부활에 대한 희망적인 소식도 전해지고 있는데.

A. (최 회장) 맨몸으로 힘과 기술을 겨루는 레슬링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종목 아닌가. 근대올림픽의 표어가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인데 레슬링만큼 ‘강함’을 추구하는 종목이 또 있나. 오죽하면 올림픽의 상징인 그리스의 성화 채화대를 받치고 있는 조각도 레슬러들이다.

단순히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레슬링이 퇴출되는 일따윈 절대 일어나서도 안되고, 또 일어날 수 도 없다고 본다. IOC가 문제 삼았던 라파엘 마르티네티 FILA 회장도 사퇴했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레슬링이 반드시 부활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다. 국민들도 올림픽 정신이 담긴 종목이자 한국의 전통적인 효자종목 레슬링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도록 많은 성원과 관심을 보내주길 기대한다.

(정지현) 5월 러시아에서 열릴 IOC 집행위원회에서 반드시 레슬링이 부활해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키우고 있는 많은 후배 선수들이 안심하고 훈련에만 열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국민에게 더욱 사랑받는 종목으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 선수들도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겠다.

대담=황선학 체육부장 2hwangpo@kyeonggi.com  

정리=박민수기자 kiryang@kyeonggi.com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