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무언가를 미치게 좋아하면

7살짜리 아이가 자기 몸보다 큰 구두통을 메고 매일 집을 나선다. 생계에 찌든 얼굴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재미난 장난에 몰두한 또래 개구쟁이와 한 가지다. 데 바스콘셀로스가 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주인공 제제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가난은 소년을 거리로 내몰지만 어느 한구석 절망의 그늘이 없다. 아마 장난거리 물색에 미쳐 있기 때문일 게다.

더러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때가 있다. 지난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이-루이스도 그렇다. 연기를 위해 뼈가 부러지고 폐렴에 걸리는 등 “연기에 미쳤다”는 후일담이 전해졌다. 잘 알려진 올드팝 ‘Crazy love’가 미친(사이코패스: psychopath)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 안다.

또 ‘마니아(mania)’란 이상할 정도로 극단의 열광자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너무 좋아서 미쳤다는 것이다. 연기에 미치고, 사랑에 미치고, 장난에 미치고. 미친 그들의 공통점은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needs를 들어 다섯 단계로 설명했다. 생존과 성장을 위한 기초적인 단계 해결이 첫 번째. 두 번째 안전에 대한 보호 욕구. 그다음으로 사회적 동물로서의 소속감이 세 번째. 인간이 권력, 명예 등의 성취욕이 생기는 것은 네 번째 단계. 마지막 다섯 번째에서는 자기실현의 추상적인 욕구이다.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가 일정 수준 이상 충족되면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생물학적 욕구라면 다섯 번째는 충족이 커질수록 다른 욕구가 강해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 속담의 ‘말 타면 마부 부리고 싶다’와 닮은꼴이다. 욕심의 또 다른 표현이지만 본능에 충실한 측면에서 끝없는 성장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자기 성장의 욕구는 미치도록 매진하는 일에서 행복을 느낄 때 나오는 능력이다.

3월, 캠퍼스에는 새내기 꽃이 싱그럽다. 그러나 꽃의 화사함 뒤로는 여전히 무거운 근심이 드리운다. 청년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좌절, 포기, 사회에 대한 원망을 먼저 쏟는다. 안다. 청년실업, 비정규직…그들에게 꿈이란 바라볼 용기조차 없는 사치인 것을.

봄의 들녘에는 밟을수록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는 보리밟기가 한창이다. 젊은 어느 때, 내 삶이 불이익이의 대명사처럼 느껴지던 그때 보리밟기를 좌우명으로 삼고 “나를 더 밟으시오”라고 세상에 외쳐댄 적 있다. 그대들도 이렇게 해봤으면 좋겠다. 미친 듯이 좋아하는 일을 향해 간다면 밟혀도 행복하니까!

 

이 미 숙 (사)한국미디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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