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집, 큰차, 큰돈…. 21세기는 큰 것에 열광하지만 언제나 큰 것만 주어지지 않고 ‘큰 것=행복’이 필요충분조건은 더욱 아니다.
인생은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금아 선생과 여생을 소풍 나온 듯 사시며 큰 것 욕심 없었던 천상병 시인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지난달 종업식을 마치고 성적표를 내놓는 아들의 어깨가 늘어졌다. 입시전쟁이라고 하는 고등학문이고 보니 평균이 떨어졌다는 통보는 전투에서 패배한 장군의 얼굴을 방불케 할 만큼 침통하다. 본인의 노력 부족은 인정 안 하고 시험 문제의 공정성을 들먹인다. 시험을 못 치른 학생들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그깟 숫자 몇 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 입맛까지 잃고 앉아 있는 모습이 측은해 대뜸 A4용지 들이밀며 집을 그려보라고 했다. 또 게임하자는 걸로 알았던지 늘 장난꾸러기 같은 엄마의 행동을 어른스럽게 다 받아주는 아이인데도 그날은 뚱딴지같다는 얼굴로 곁눈질하더니 마지못해 끄적끄적 지붕부터 그려 놓는다. 거기서 그리던 손을 멈추게 하고 말했다.
“지붕만 있으면 집이 서있을 수 있을까? 물론 지붕이 가장 높은 자리니까 중요하지. 그렇지만 집에는 기둥도 필요하고 문, 방, 마루도 있어야해. 우리 아들은 나라의 기둥감이야!”
지붕중시교육의 피해자에게 설명하기엔 부족했지만 역피라미드는 오래 서있을 수 없다는 위로에 사력을 다했다. 너무 자주 오르내려 구토를 느낄만큼 흔한 예지만 아직도 구호뿐이고 여전히 남의 일에만 한정된 것 같아 말하고 난 뒷맛이 쓰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지 열흘이 넘었다. 대선 공약에서는 작은 정부를 암시했으나 공룡에 빗대어 운운하는 부처도 있는 거 보면 여전히 지붕에 무게를 두는 게 아닌가 싶다.
새 봄, 새 정부다. 겉으론 지난번의 것과 별 다를 것 없어 보여도 분명 다른 모습을 품고 나왔을 것으로 믿어지는 새싹처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정부였으면 한다. 기필코 지붕만 되려고 하기보다는 기둥, 구들장, 하수도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버팀목이 되는 구성 요소를 이루었으면 한다. 나라의 기둥은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이 미 숙 (사)한국미디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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