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그래 그래”

이미숙

겉으로만 봐도 성격 좋게 생긴 젊은 남자를 알게 됐다. 십년지기 친구들과 알음알음으로 엮어서 만들어진 행복한 자리. 잘 차려지진 않았지만 행복이 소박하게 흐르는 상을 가운데 두고 좌석의 연장자에게 건배사를 제안하려는 때에 그 젊은 남자가 제안한다. 오늘은 누가 어떤 말을 해도 “그래 그래” 해주자고.

그날 밤 이야기가 샘솟는 듯 뿌려졌다. 모임에 참석이 적어 서운하다로 시작해서 앞으로는 좀 더 자주 만나자고도 했고 심지어 어떤 이는 대놓고 자신은 일이 최우선이라며 친구 만남은 2등도 아닌 3등이라는 정직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음에도 모두는 “그래 그래”로 화답했다.

그 여세를 몰아 “롱다리 미모”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주책을 부려봤는데 “그래 그래”가 바로 돌아왔다. 물론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갈수록 말이 험해지고 커뮤니케이션이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으로 되어가는 세상에서 대화를 긍정적인 마인드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용어가 있다는 걸 알았다.

 

수사학(Rhetoric)의 대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전달자의 신뢰도), 파토스(정서적 소구), 로고스(논리적 소구)의 세 가지 요소를 들어 대화에 필요한 증거의 유형을 발전시켰다. 커뮤니케이터의 저명성이나 신뢰도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높아진다는 에토스. 청자의 감정 상태를 평가하여 그에 맞는 상황을 파악하는 파토스. 논리적인 방법으로 자료나 사례를 제시해 삼단논법(Syllogism)으로 대표되는 로고스. “그래 그래”는 이 중 파토스의 성격을 담고 있는 기교적 소구라고 볼 수 있다. 청자의 심리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적절한 열정과 의지를 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기분 좋은 만남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래 그래”가 늘 통하지 않는 데 있다. 그래도 해보자는 것이다. 대화할 때 일단은 긍정적으로 들어줄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면 입이 독해지지 않는다. 말의 위력은 대단하여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일 때 화자의 기분이 좋아지게 돼 있다.

말 한마디는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다. 입에서 나온 말의 주술적인 작용으로 생각된다. 각박한 세상에 뿌려지는 두 글자 “그래 그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주문이 될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무조건 한번 써보시라.

 

/이미숙 (사)한국미디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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