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취업 역전현상은 저출산으로 20대 인구는 줄고 고령인구가 늘어났다는 단순한 평면적 이유보다는 나이에 안주하지 않고 작은 것에라도 땀 흘림으로 보람을 찾으려는 열혈 노인들이 늘어난 것에 연유한 듯하다.
물론 그 중에는 생계형 취업의 경우도 적지 아니하겠으나 많은 이들이 뒷방 노인네처럼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되기를 거부하고 과거의 눈높이에 아랑곳 없이 일을 통해 자존감을 일깨우려는 비범한 열정과 자유를 표출하는 듯해 마음이 기꺼웁다.
1977년, 교정조직의 대선배가 일본출장을 다녀온 후 직원 교육시간에 털어놓은 후일담이 감명 깊게 들었었다. 일본 법무성 간부들과 환담을 할 시, 퇴임을 앞둔 모교도소장이 교도소 매점의 손수레담당 일용직 자리가 마침 공석이어서 퇴임 후 거기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아주 신명이나 자랑을 했고 그 얘기를 들은 주변 간부들은 모두가 이를 부러워하더라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사회일반의 상식으로는 뜨악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그네들의 삶에 대한 인식―인생을 다독이고 타협해 가는 그 자세를 우리가 배워가야 할 것이라고 그 선배는 힘주어 말했고 나 또한 고개 끄덕여 그 의견에 동의했었었다.
아마도 한 세대쯤 지나 도생에 급급한 이 가난이 물러가고 나라 경제가 융성하여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그들만큼 비슷해지면 우리 사회 또한 고위층을 포함한 은퇴자들이 버림과 낮춤의 미덕에 익숙해지고, 보다 유연한 삶을 견인해 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었다.
그로부터 30여년, 훌쩍 한 세대가 지났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초등학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선생님이 여생을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다며 자신이 교장으로 재직했던 그 학교에 수위로 임명되어 다시 근무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문득 그 옛날의 선배가 기억되고 가슴이 따뜻해져왔다. 보고 듣기에는 아름다울지언정 결코 손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이도 순박하고 꽃 같은 초등학생들을 늘상 접하고 닮아 교장선생님의 마음 또한 맑고 고왔던 탓에 가능 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아무나 기회가 주어지고 또한 아무나 마음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을 터, 취업만을 능사로 여겨 목을 맬 일은 결코 아니다.
일에서의 은퇴가 삶에서의 은퇴는 아니거늘 호구지책이 아니라면 마음의 준비도 없이 바쁘게 비집고 달려들어 내상을 자초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늙으면 뒷방에서 쉬어야지 젊을 때 개미가 못되고 베짱이가 되어 번 돈 다 써버리고 어쩔 수 없이 일해 젊은이들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앙칼진 비난까지 달려들고 있는 바에야.
인생은 어디로든 나아가는 만큼 사는 것이라 했다. 노동을 보수와 연계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자신이 지닌 시간과 재능으로 봉사의 길을 찾는다면 그 길은 도처에 넘쳐난다. 사회의 공동선을 고양시키고 이타심의 구현으로 오히려 스스로를 충족시켜가는 자원봉사의 장이야말로 어쩌면 잊어버린 청춘의 열정까지 되새김할 수 있어 노년의 일상을 풋풋하게 가꾸어 주리라.
남은 인생 또 어느 구비에서 우리는 오늘을 돌아보며 무력했던 스스로를 후회할지도 모른다. 젊지 않아도 갈 수 있고 젊지 않아야 더욱 어울리는 길, 어쩌면 그것은 배려와 나눔을 표징하는 봉사의 길일 것이다.
더 이상 늙고 싶지 않았던 40대 중반, 많은 이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낭만에 대하여」는 최백호와 더불어 어느새 60의 고개를 훌적 넘었고 이미 숨이 차다. 이제는 이미자의「황혼의 부르스」다. 늘그막의 마음과 노래는 따뜻하고 여명을 뛰우고서야 여유롭고 가슴에 담아지기 때문이다. 봉사의 길도 그렇다.
이 태 희 前 법무부교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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