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여전히 힐링이 필요해

연말연초 서점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서적이 있으니 ‘○○○○ 트렌드’라는 이름을 달고 누워있는(판매성적이 좋은 것은 간혹 서있기도 한다) 책들이다.

트렌드는 3~4년 정도 어떤 요인이 지속적으로 관심이 되는 경향을 말한다. 한 해 뜨겁게 달궜던 유행(fad)과는 구분된다. 그래서 올해 트렌드로 선정된 항목들은 작년의 흐름을 이어받아 구체성을 띠거나 변형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이것이 지속성을 갖고 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 의식화(ritual)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생활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생활 ○○○’라는 단어가 유독 귀에 잘 들린다. 머리스타일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에 가득 차 있을 때, 멋진 헤어스타일이 곧 잘 발견되듯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활은 일상적으로 당연히 이루어지는 생활일 뿐 문화나 정치, 경제를 논할 때 그다지 중요하게 분석해야할 대상으로 적극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수입보다 수출이 더 많아서 살기 힘들어…’ 어떤 주부의 수다 속 한탄이 자연스러울 만큼 우리나라 수출입 수치에 의해 나의 경제 걱정 수위가 오르락 내리락할 정도였으니…. 요즘 지루하게 들리는 서민경제는 알고 보면 그닥 오래된 말은 아니다.

힘든 심정 위로받고 싶은 욕망

몇 년 전부터 생활 CF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전제품이나 사무용품, 카드광고까지 생활에 도움을 준다는 방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에서 ‘쓴 만큼 적립된다’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동네 ○○편의점 이름 앞에 걸린 콘셉트는 ‘생활문화공간’이다. 생활 혹은 일상은 모든 트렌드의 출발이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단어가 있었다. ‘○○치료’가 그것이다. 음악치료, 미술치료, 독서치료, 춤치료, 흙치료 등등…. 미술치료가 한창 일 때 일시적으로 불다 말 바람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 음악치료와 관련된 학과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속된 말로 학교들이 장사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을 한마디로 정리해 버린 것이 있으니 바로 ‘힐링’이었다.

사회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 아름다운지라 해외수출이 가계지출보다 중요했고, 외국인관광객이 우리가족 여가생활보다 중요했지만, 여전히 목마른 것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였다. 일상생활의 소중함과 나의 것을 들여다 보고자하는 갈망은 허무한 위로, 허접한 독려, 뜬금없는 반응이라도 괜찮다는 식이다. 힐링의 핵심은 ‘나’에 있다. 내가 힐링의 대상인 것이다. 힘들어하는 나의 심정을 위로받고 싶은 강렬한 욕망아닐까.

공감을 필요로 하는 모두의 트렌드

힐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비전문가인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은 ‘들어주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어찌되었던 성찰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내가 힐링을 중요하게 보는 관점이다. 자기성찰이 필요한 개인화된 시대이지만 개인화가 성찰의 계기가 되지 못한다. 힐링은 어쩌면 공감을 필요로 하는 개인화된 사회에 아주 유효한 방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 힐링이 필요해’라는 유행어가 계속될 것으로 각계가 공히 전망하는 올해의 트렌드다.

 

민 병 은 한국문화의집협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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