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었는지 명확하게는 알 수 없다. ‘수서’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은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잔치를 베풀었고, 이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사’에도 구대속절(九大俗節)의 하나로 기록되었고, 조선시대에는 4대명절의 하나로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1930년 우리말, 우리글, 우리의 성과 이름과 한민족의 정신적 뿌리문화인 설까지도 빼앗았다. 광복이 된 후에도 정부는 양력설만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지속시켰다. 1989년까지만 해도 양력 1월 1일부터 3일간이 공휴일이었고 음력설은 ‘민속의 날’로 단 하루 공휴일로 지정했다.
민족 고유의 설은 이렇듯 이중과세라는 명목하에 오랫동안 억제되어왔던 것이다. 그나마 민의가 반영되어 1985년 어색한 명칭이나마 ‘민속의 날’로 부활 할 수 있었다. 명칭의 논의과정에서도 ‘민속의 날’, ‘농민의 날’ 등이 거론되었으며 ‘설날’, ‘민속설날’ 등의 이름으로 방황하다가 1989년 2월 1일 정부가 음력 1월 1일을 전후한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함으로써 오늘날의 설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우리민족에게 있어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민족최대의 명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전무할 것이라 여긴다. 그럼에도 그 명절을 지칭하는 명칭은 아직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구정이라고 하는 이들은 일제의 문화적 강탈이 얼마나 심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민족적 아픔의 근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설과 설날은 의미의 혼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우리민족의 최대명절의 명칭은 ‘설’이라 해야 한다. 설을 맞는 날을 설날이라 해야 옳다.
설의 어원에 대한 근거는 여럿이다. 어떤 이들은 ‘한 살, 두 살’이라고 하는‘살’이 음운변화를 가져와 ‘설’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설은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날이며 첫머리라는 의미에서 그 어원을 유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여 설이라는 말은 ‘설다’, ‘낯설다’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이치에 맞다.
즉 설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의 속성을 가장 강하게 띠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홈페이지에도 우리의 명절을 ‘설날’이라 명명하고 있으나 이는 한자의 기록인 신일(愼日), 즉 ‘삼가하는 날’의 의미만을 따르고 있는 것이지 명절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우리는 설연휴라고는 하여도 설날연휴라고는 하지 않는다. 설명절이라고 하지 설날명절이라고 하지 않는다. 명절을 맞아 특별사면 되는 이들을 말할 때에도 설특사라고 하지 설날특사라 하지 않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설이라 하면 동지로부터 정월보름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이르는 말이다. 빚을 갚는 것도, 인사를 드리는 것도 다 이 기간을 두고 이루어진다. 가능하면 설날 전에 모든 해 묵은 것들을 해결해야 하지만 여의치 않았을 때는 음력 정월보름 안에 해결하도록 말미를 주는 것이 우리의 풍속이고 전통이다.
뱀은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2013년 계사년(癸巳年) 설 명절을 맞아 한 해의 풍흉을 가리는 점세(占歲)가 오붓하게 모인 가족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풍요롭다 여겨지길 기원한다.
김 용 국 (사)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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