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객관적이라는 말에 대하여

새해 첫날이면 어느 분은 언제나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읽는다고 했고, 어느 분은 동해 바닷가에 가서 일출을 보며 새해 구상을 한다고 했다. 이분들의 규칙적인 모습은 게으른데다 불규칙한 생활 습성을 지속하는 나 같은 자에게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연말연시면 저절로 머리 한구석에 떠올려지는 작품이 있다. 대학시절 읽은 소설인데 연말연시는 물론 중요한 결정을 앞두거나 골치 아픈 상황과 맞닥뜨리면 본의건 본의 아니건 그 내용과 의미가 머릿속에 오락가락하는 걸 보면 신기할 때도 있다.

일본 최고의 문학상은 35세의 나이에 ‘그저 막연한 불안’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아쿠다가와 류노스케를 기리기 위한 ‘아쿠다가와 상’이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는 “잘 정제된 보석” 같은 언어로 인간의 내면과 인간사의 진리를 예리하게 묘사했다. 그중에서도 ‘덤불 속’은 압권이다.

덤불 속의 줄거리는 사실 간단하다.

산 속에서 무사의 시체가 발견되자 수사에 나선 수사관에게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진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말에서 떨어진 통에 사로잡힌 도둑 다조마루는 이제 막 결혼해 길을 나선 무사의 신부에 마음을 빼앗겼다. 무사의 부인을 취하기 위해 다조마루는 무사에게 산기슭에 묻힌 보물을 찾아 나누자고 유혹했다.

으슥한 곳에서 본색을 드러낸 다조마루와 무사는 격렬한 대결을 벌였으나 무사는 악명 높은 도둑 다조마루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무사를 나무에 묶어두고 무사의 부인을 겁탈한 후 달아난 다조마루는 다리를 건너다 말에서 떨어져 체포되고 말았다. 경찰에 잡힌 다조마루는 수사관에 무사의 시체와의 연관에 대한 취조를 받게 된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지만 수사관 앞에 진술하는 다조마루와 무사의 부인 그리고 무당의 입을 빌려 말하는 무사의 영혼의 진술은 달랐다. 다조마루는 무사의 부인을 차지하기 위해 무사와 결투를 벌인 후 무사를 죽였다고 했지만, 무사의 부인은 다조마루에게 정조를 빼앗긴 자신을 멸시하는 남편을 자신이 죽였다고 진술했고 무당의 입을 빌린 무사의 영혼은 수치심에 자결했다고 했다.

몇 해 전 모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학생들에게 덤불 속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과제를 낸 적이 있다. 객관성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였는데, 일본에서 유학 온 여학생의 레포트를 통해 덤불 속을 분석한 글이 수백편이 넘고 진정한 사실을 알고자 여러 차례 재연도 했지만 아직도 진실은 오리무중이라는 것을 흥미롭게 읽었다. 덤불 속의 ‘진실’을 알기 위한 이런 시도에 아쿠다가와 류노스케는 깔깔대며 웃어넘길지도 모르겠다. 그가 의도했던 것은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인데 겨우 누가 죽였는가에 관심이나 갖다니… 하고 말이다.

우리는 흔히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또는 “내가 경험한 것이니 이게 맞아!” 등의 말을 쉽게 한다. 자신이 본 것이니 진실이고 자신이 겪었으니 맞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시각이라는 것 그리고 기억이란 자신의 필요와 생각,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치적 견해와 입장 등에 따라 과거는 물론 어떠한 현상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이번 대선의 패인에 대한 민주당의 갈등과 수개표 논란 등을 보니 덤불 속 생각이 또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김 상 엽 건국대 연구교수•문화재청문화재감정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