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공자가 말한 40대 불혹, 50대 지천명, 그리고 60대 이순을 거치면서 허겁지겁 살아온 본인의 인생을 한번쯤은 되돌아보게 된다. 계사년 벽두부터 들려오는 노동자들의 자살, 인기탤런트 최진실의 전남편이자 한 때를 풍미했던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조성민의 자살 소식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지나쳐버렸을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옛 선비들은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끝까지 같이 갈 친구로서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생각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세한삼우로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한나라의 대통령부터 기업인, 유명 연예인, 주부, 일반 노동자, 학생,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살이 유행병처럼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 굳이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통계를 예로 들지 않아도 한국은 이미 ‘자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70, 80년대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급속한 경제 성장과 더불어 물질, 기계 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정신적 적응이나 가치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물질 문명 속에서 우리는 늘 ‘세상에는 나 혼자뿐’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은연중에 자살하는 유명인들을 베르테르효과니 베르테르증후군이니 하면서 미화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죽은자를 열사니 하며 순교자인양 영웅시 하는 풍조가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그로 인해 그들의 자살을 더욱 부추기고 모방 자살이라는 또다른 ‘죽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삶과 죽음은 선택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외롭고 두렵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언젠가는 혼자가 될 것이라는 진리… 누굴 위해서 아파할 수도 죽어줄 수도 없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으로서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이는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이요, 곧 자기에 대한 책임 회피이자 살인 행위임을 인식해야 한다. 자살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론과 방송도 자살 문화의 확산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는 자제하고 자살에 대해서는 냉혹한 비판을 가해야 할 것이다. 최근 부산시가 전국 처음으로 자살 예방을 위한 ‘심리적 부검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핀란드가 1980년대에 처음 국가 차원의 자살 방지 프로젝트인 심리적 부검 제도를 실시한 덕분에 자살률이 23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웃나라인 일본도 정부와 민간단체가 자살 예방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꾸준히 추진하면서 15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자살자를 3만명 이하로 떨어지게 했다고 한다.
최제우의 홍익인간 정신이 아니더라도 국가 운영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의 삶을 인간답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있다. 부평초 같은 제한된 삶 속에서 우리는 현명하게 삶을 소비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기에 경제와 국력 상승에도 불구하고 국민 행복도는 꼴찌에서 헤매고 왜 자살률은 세계 최고인지 범사회적 수준에서 검토해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제 자살 문화의 확산을 방지하고 생명 존중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하루빨리 장기적인 역학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때인 것이다. 온 국민과 사회, 정부가 합심하여 국가적 차원의 책무와 예방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공 경 호 오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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