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에게도 1억원은 분명 큰 돈이었을 텐데…. 아무리 벌어도 더 벌려고 작은 장사치 따위는 깔아뭉개고 골목골목 대형 마트들이 들어서는 걸 보면 그들에게는 돈이 어떤 맛인지 묻고 싶어지더군요. 아래 위 앞 뒤 따지지 않고 달려들 때의 돈은 분명 무서운 맛일 겁니다. 하지만 돈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순리대로 흘러간다면 그 돈 맛은 맛있겠지요.
20여 년 전 쯤 대학을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이삿짐을 나르러 다닌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 강남 쪽의 한 판자촌 이사가 들어왔지요. 인부들은 서로 안 나가려고 몸을 사렸습니다. 그래도 저를 포함해 세 사람이 판자촌으로 이삿짐을 나르러 갔습니다. 막 겨울이 사작되고 있을 때라 한 겨울보다 더 추웠습니다.
도착해보니 할머니 한 분과 초등학교 5, 6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인부들을 기다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더군요. 트럭이 서 있는 도로까지 100여m 가까운 거리를 오가며 짐을 날라야 했지만 세 사람은 묵묵히 이삿짐을 날라 트럭에 실었습니다. 짐을 모두 싣고 떠나려는데 할머니가 자신과 손녀도 같이 트럭에 태워달라고 하더군요.
“어디로 가면 되죠?” “내가 타서 가르쳐줘야 해요.”
결국 인부 둘이 트럭 뒤 칸에 타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았고 할머니와 여자 아이가 트럭 조수석에 타고 목적지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지는 비닐하우스 촌이었습니다. 판자촌에서 더 몰락해서 비닐하우스 촌으로 이사를 했던 겁니다. 어쨌든 이삿짐을 비닐하우스 안에 날라놓고 비용을 받으려는데 할머니가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건네주더군요. 반장이 그 돈을 받아 든 후 우리는 트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트럭에 시동도 걸지 않고 한참 담배를 피워대더군요.
“너 지갑에 얼마 있냐?”
반장은 저와 다른 인부의 주머니와 지갑을 탈탈 털었습니다. 이삿짐 일은 그날 당일에 인건비를 받는 터라 어제 받은 돈이 주머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겁니다. 그 돈을 모두 반장에게 건넸지요. 아마 제 기억으로는 이삿짐 비용에 다섯 배가 넘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반장은 할머니에게 받은 돈까지 합친 후 할머니가 이사한 비닐하우스로 다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저와 다른 인부도 반장의 뒤를 따라갔지요.
“할머니 이거 얼마 안 되지만 곧 추워질 텐데 쌀이랑 연탄이랑 들여놓으세요.” “안 그래도 되는데…”
몇 번 실랑이가 오갔지만 결국 반장은 할머니의 손에 돈을 쥐어주었습니다. 그런 후 우리는 입맛만 다시며 트럭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소 이삿짐을 나르러 나가면 악착같이 악덕을 부려 대폿값까지 받아내던 반장이라 그의 행동이 의외였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반장이 그런 악덕을 부렸던 건 제법 잘 사는 집이 이사를 할 때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미안하다. 나중에 품삯 많이 나오는 일 잡히면 너희들 우선으로 잡아줄게.”
그날 저녁 반장은 이삿짐 사무실 근처 슈퍼 앞 평상에서 멸치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사주었습니다. 그 막걸리 맛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돈만 아는 사람들은 평생 알지 못하는 진짜 맛있는 돈 맛이었습니다.
전 민 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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