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퓨전의 힘, 미래 한류산업의 원동력

‘마이 리틀 히어로’(김성훈). 이 영화는 뮤지컬 음악감독인 유일한(김래원)과 혼혈청소년 영광(지대한)의 브로드웨이 입성기이다.

유일한은 브로드웨이 입성이 꿈인 젊은 음악감독이다. 재능은 있지만 가난해서 유학을 가지 못한채 꿈을 접어야 했던 그는 대가들의 작품을 짜깁기하는 것으로만 인정받은 처지였다. 열등의식과 속물근성에 젖어 있던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다. 새로운 뮤지컬 음악감독과 신인청소년 배우를 선발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정조대왕의 어린 시절을 연기할 뮤지컬 배우에 하필이면 필리핀 혼혈인 영광이 선발된다. 유일한은 민족적 편견을 갖고 있었고 영광을 가르칠 의욕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영광은 노력으로 자신이 못하는 춤을 마스터하여 뮤지컬 배우로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혼혈이 과연 한국인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완득이’ 이후 메이저영화로서는 두 번째 혼혈아동 소재영화다. 뮤지컬의 고장 뉴욕은 그야말로 혼혈의 전시장이다. 유럽계, 중남미계, 아시아계 백인이든 흑인이든 이미 미국 뮤지컬은 혼혈시장 그 자체다. ‘미스 사이공’의 여주인공인 베트남계 여자역을 따기 위해서 수천명의 아시아계 미국혼혈 여자배우들이 지원한다.

그런 현실을 보면 이 영화가 제기하고 있는 혼혈아 문제는 우물안개구리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오랫동안 단일민족 신화에 젖어서 마치 한국이 한혈통인줄 착각한다. 이미 한국안에는 수많은 혈통들이 혼재되어 있다.

신라시대 때부터 회회아비라고 표현되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문헌에 등장하고 처용도 중동지역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임진왜란 이후 잡혔다가 조선에 귀화한 일본인들이 많고 거꾸로 끌려간 조선도공의 후예들이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수대째 살고 있다.

‘박수건달’(조진규)은 건달이 어느날 박수무당이 되어 양쪽을 오가면서 벌이는 코미디이다. 이 영화는 무당이라는 소재를 조폭과 비빔밥으로 버무려 만든 퓨전 코미디다. 무당소재는 한국적이고 조폭소재는 서구 갱 소재에서 온 것이다. 한국과 서양이 만나 코메리칸 퓨전이 만들어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 ‘사랑과 영혼’에 보면 서양 무당이 등장한다. 우피 골드버그가 연기한 그녀는 죽은 남편의 영혼을 몸에 넣어 아내에게 당부의 말도 하면서 아내를 감동시킨다. 아내는 흑인 여자의 몸속에 죽은 남편이 살아있음을 확실히 느낀다. 이 똑같은 장면들이 ‘박수건달’에 살아있다. 그건 ‘사랑과 영혼’의 모방이기도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의 굿 문화 속에 존재하던 장면이었다. 오히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랑과 영혼’이 무당굿을 훔쳐간 것처럼 보인다.

퓨전은 이렇게 서구화된 동양적인 것을 다시 재탈취해 내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두편의 한국영화는 퓨전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롭게 제기한다. 하지만 그건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우리 유전자 속에는 퓨전을 통해 역사를 일궈왔던 위대한 피가 흐르는 것이다. 신년벽두에 개봉된 두 편의 한국영화는 최근 불어닥친 서구의 한류인기를 어떻게 연속시킬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제공한다.

무엇이 한국적인가. 그 문제의 답은 여기에 있다. 한국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퓨전화되어 우리 것이 아닌 것이 한국적인 것과 어우러진 것이 한국적인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우리 것이 아니다. 그건 세계인의 음률이고 세계인의 동작이다. 그걸 자꾸 우리 거라고 우기는 논법이 우물 안 개구리다. 남의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인 누가 봐도 한국적임을 느낀다. 그걸 강변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랴.

 

정 재 형 동국대 영화학과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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