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healing)’가 시대적 화두로 떠올랐다. 치유 대신 주로 ‘힐링’이란 외래어로 더 많이 표현되는데, 올해 문화계의 여러 키워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힐링뮤직’이라든가 ‘힐링미술’이 부각되는가 하면 힐링 효과가 있다는 책들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힐링의 사전적 정의는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의 치유다. 평범한 이 낱말이 사회적 키워드로 쓰일 때는 그 무게 중심이 몸 아닌 마음 쪽으로 쏠려 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이 많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장기간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양극화 심화, 극심한 실업난은 거의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됐다. 비록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하더라도 ‘불안’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는 상황이고 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위로받고 치유되어야 대상이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이처럼 거창한 문제를 들지 않아도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 내상(內傷)을 입고 사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이를테면 우리 시대의 ‘엄마’들이 그렇다. 결혼 전 나름대로 각자의 성취를 위해 달려오다가, 결혼 이후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과정과 함께 가사노동 등으로 자기 이름을 잃은 채 살아가는 게 대부분 엄마의 현실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즈음이면 이른바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깊은 내상(內傷)을 입은 상태여서 자기 성취는커녕 노동 시장 진입조차 쉽지 않다. 누군가의 아내와 누군가의 엄마 또는 며느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상황에서 한때 꾸었던 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히거나 스러진다.
안양문화재단의 지난 한해 마지막 공연은 그런 엄마들의 무대였다. 20여명의 엄마들이 8개월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두 차례 무대를 통해 선보였다. 주제는 물론 엄마들의 이야기였다. 공연 중 상당수 관객은 공감의 눈물을 흘렸고, 공연 뒤에는 엄마들이 눈물을 쏟았다.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이라는 이 프로그램에 스스로 참여한 엄마들은 첫 모임에서 한결같이 ‘잊혀진 그 무엇’을 찾고 싶다고 했다. 더러 ‘반란’이란 말에 이끌려 왔다고도 했다. 여전히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분주한데도 공연을 앞두고는 모든 걸 접고 연습에 몰입하기도 했다. 연극이 끝난 뒤 엄마들이 과연 ‘잊힌 것을 되찾는 것’으로서의 ‘치유’가 이뤄졌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민의 일상과 함께 하는 문화’라는 기치를 내 건 문화재단으로서 마땅히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보여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아픈 마음의 치유에는 문화가 가장 주효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그렇다.
노 재 천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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