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특별하다.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공연팀에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출연하기 때문.
그 학생은 청소년 힐링캠프에서 만난 적이 있는 소위 부적응 학생이다. 3박4일 간의 캠프 일정 동안 내내 표정이 불안하고 어두운 아이였다. 광주시청소년극단이 출연한 뮤지컬 갈라쇼를 보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선뜻 출연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연습과정에 성실하게 임한다는 보장도 없었고, 공연의 앙상블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울에서 경기도 광주까지 어린 여학생 혼자 오가는 것도 마음이 걸렸다. 단호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한번만 믿어달라며 계속 전화가 왔다. 결국 금연과 성실한 연습 참여를 다짐 받고 출연을 허락했다.
어제 그 아이의 공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필자 뿐 아니라 상당수의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상처받은 한 소녀의 역할을 정말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완벽하게 극 속으로 녹아들어가 한 인물을 표현하고 있는 그 아이의 얼굴에서 더 이상 어둡고 불안한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저 아이를 저렇게 변화시켰을까? 그것은 관심과 믿음이었다. 나는 아이의 아픈 과거에 자세하게 묻지도 않았다. 철저하게 그 아이가 맡은 배역만을 가지고 대화했다.
청소년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따뜻한 관심 속에서 변화한다. 따뜻한 관심이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그들을 품안에 끌어 안으려고만 하지만 그들은 대화가 통하는 친구에게 끌린다.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 중에 발생하는 불안감과 자아의식의 발달로 야기되는 해방과 독립에 대한 욕구로 인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거나 자신을 이해한다고 믿는 소위 ‘이해자’를 찾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일탈에 흥분하고 분노하기 보다는 청소년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유있는 고민과 반항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해자’로서의 어른들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 기 복 광주시연극협회장 청석 에듀씨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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