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고목나무에 꽃 피우기

지난 11월22일 제4회 오프앤프리 국제영화예술제가 일주일간 열렸다.

개막작은 1948년 윤대룡 감독의 흑백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이었다. 무성영화는 일제 시대때부터 시작해서 해방직후까지 존재했던 특이한 문화유산이다. 무성영화 감상은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한데 하나는 고유자막을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변사를 쓰는 방식이다. 이날 마지막 변사인 신출(84)의 출연으로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신출은 일제 강점기 향유했던 무성영화들을 위시하여 많은 작품을 연기했던 변사이고 해방직후 무성영화가 한동안 존재했던 그 시기 마지막 변사였다.

왜 마지막 변사인가. 그에겐 제자가 없기 때문이다. 몇 번 제자를 길러냈으나 미래가 없다는 이유로 몇 개월하고는 나갔다는 것이다. 변사란 영화를 구성지게 해설해주는 감초같은 존재며 예술전수자와 같은 존재이다. 정말 판소리를 많이 닮았다. 변사는 국악의 판소리명인처럼 대회를 통해 보존하든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출 이후로 대한민국에서 변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현재 영상자료원에서는 최근 발굴한 안종화 감독의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를 복원하여 감상회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병훈 원장의 얘기를 들어보면 서울역에서 했던 그 사업은 많은 돈을 투자하여 브랜드 가치를 높였으며 관객들의 인기도 대단하다고 한다.

12월2일 영상자료원과 동국대학교에서는 메카디미어라는 국제 학술컨퍼런스를 개최하였다. 메카디미어란 단체는 일본만화 및 애니메이션을 연구하는 국제학술단체다. 올해 처음 한국에서 개최되어 한국애니메이션 한편을 상영하는 행사를 갖게 되었다.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전’(1967)이었다. 2008년 일본에서 발견되어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된 이 영화는 한국 최초의 창작 장편애니메이션 영화다.

이 영화를 보게된 전세계 70여명의 외국애니메이션 학자들은 한국의 애니메이션 기술과 기법, 미학에 다문 입을 벌리지 못할 정도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그당시 낙후된 한국의 기술로 이러한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단 말인가. 애니메이션 하면 일본을 떠올리고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 월트디즈니의 하청작업만을 해온 나라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걸작 창작애니메이션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보다도 더 놀란 것이다.

사실 한국사람들은 제 안에 숨겨진 보배를 전혀 모른다. 외국의 기술에만 기대고 항상 짝퉁만을 만든다는 열등의식에 젖어있어 한번도 자신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역사속에서 배운 적이 없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 역사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동우 그림,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전’, ‘호피와 차돌바위’를 역사속에서 배운 적이 없다. 영화과 학생들조차 한국영화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정권이 바뀔 때면 영화인들은 저마다 돈만 대달라고 아우성이다. 정말 필요한 돈은 전통의 복원과 확대에 써야한다. 우리가 그동안 전승해온 위대한 전통들, 그 보물들을 때 빼고 광내서 지금 시대에 다시 선보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신출의 후계자도 전승시키고 창작애니메이션을 격려하여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부터 챙길 일이다. 고목나무에 꽃을 피우는 것, 그게 우리의 살 길이며 블루오션이다.

 

정 재 형 동국대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