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크리스마스 단상-680켤레의 양말

지난 일요일 성당의 주일미사에 참석했더니 강론시간 중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언급한 크리스마스 행사계획이 참으로 놀랍고도 신선했다.

가족, 친지, 불우이웃 등에 대해 계획하고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다면 주소를 명기하여 성당에 제출할 경우 본인과 보좌신부님, 그리고 봉사자들이 힘을 합해 직접 전달해 주겠다는 것이다. 경기도에 국한된 주소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산타클로스를 자임한 신부님의 열정과 그 행사가 줄 따뜻함이 미리 마음 깊숙이 베어들어 왔다. 한 움큼의 사랑, 그 나눔의 요체가 우리 사는 곳곳에 드리워짐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1978년 유달리 춥던 겨울 성탄전야에 나는 인천소년교도소에서 당직을 서고 있었다. 명절 등 특별한 날은 늘 상부로부터 경계강화지시가 하달되었으니 그날도 긴장한 상태로 근무에 임했었다. 바깥 세상은 온통 떠들썩한 성탄전야지만,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자조감보다는 사회방위의 일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열정으로 펄펄 끓던 이십대 덞은 시절이었기에 외로운 줄도 몰랐었다.

각 근무개소의 감독순시 등으로 부지런을 떨고 있었는데 외정문 근무 직원이 인터폰으로 보고를 해왔다. 젊은 여성 2명이 위문품을 전달하겠다며 찾아 와 책임자와의 면담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야심한 시각의 뜬금없는 방문객이 내킬리야 없겠지만 수형자를 위한 위문품을 가져왔다는 데에 물리칠 일도 아니어서 바깥청사 사무실에서 그녀들을 마주했다.

한명은 20대. 다른 한명은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모습들이 아주 단정하고 고왔다. 내방한 이유를 조심스레 묻자 나이가 많은 쪽인 듯한 여인이 조금 겸연쩍은 듯 미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저희들 학익동○○회 회원들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곳 교도소에 수용된 사람들이 안쓰러워서….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싶어 겨울양말을 준비해 왔습니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구입하였는데 육백팔십 켤레 정도 될 거에요.”

그녀들은 이른바 학익동 집창촌 아가씨들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갑갑해 왔고 이어서 아려왔다. 절망의 바닥에 단계야 있으랴마는 결코 녹녹치 않을 처지에서 다른 이웃에 가슴을 열줄 아는 그녀들이 고마워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우리 모두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자는 격려의 말도 더듬거리며 조심스레 건넸다. 그녀들이 머무는 곳 또한 결코 오래 머물 곳은 아닌 것 같다는 건방진 충고까지 곁들어서. 그러자 그녀들이 밝게 웃었다.

그녀들을 배웅하러 청사를 나서자 길을 따라 줄지어 선 잎 떨어진 벚꽃나무 사이로 겨울 칼바람이 길게 울고 있었다. 외정문 밖 어둠 속으로 전날 내린 눈을 사각사각 밟으며 두 손을 꼭 잡고 멀어지는 두 여자의 모습이 그러나 결코 추워 보이지는 않았다. 인생이 나아가는 만큼 사는 것이라면 그녀들은 반드시 성공한 인생을 살 것임을 믿고 또 기도해 주리라 마음먹었었다.

그 해의 크리스마스는 아름다운 은유를 담고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 머물렀었다. 사랑은 항상 생각보다 가까이 우리와 함께함을 깨우치게 하며….

이 태 희 前 법무부교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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