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아이랑 자라는 남자

얼마 전 한 낮의 일입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두 층 아래에 살던 중년 남자와 함께 타게 되었지요. 그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제게 혹시 대학을 나왔느냐고 묻더군요.

그렇다고 대답하자 혹시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재차 물었습니다. 자신이 학원을 운영하는데 나와서 아이들 가르쳐보지 않겠느냐고. 그분이 보기에 제가 백수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집에서 일한다고 대답을 했는데 ‘자존심은 있네’라는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그런 저간의 오해를 많이 받고 사는 편입니다. 아내가 바쁘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 제가 배웅을 하는데 아이를 배웅할 때나 마중할 때 남자 구경하기 힘듭니다. 그러니 아이를 배웅하거나 마중하러 나온 여인들이 저를 ‘노는 남자’로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마침 인근의 대형 실내놀이터에서 할인 행사를 하기에 우리 아이만 데려가 놀리고 오기가 섭섭해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의 아이 둘을 같이 데려간 적이 있습니다. 성인 남자가 여섯 살 짜리 아이들 셋을 달고 놀러 간 겁니다.

간혹 아이 한 명에 아빠 한 명이 붙어 있긴 했지만 그저 아이 꽁무니나 따라다니는 수준이었습니다. 아이들 셋을 데리고 다니는 일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을 지나치는 아이들의 엄마들이 신기한 듯 저를 보기도 하더군요.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경험하면서 제 직업이야 어찌 되었든 아직 우리 사회는 열려 있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더군요. 남자는 놀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생각보다 그 뿌리가 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남자가 육아를 책임지면 왠지 모자라 보이는 사회적 인식이 깔려있는 덕에 저는 아이들 데리고 어딜 다니면 늘 시선을 받게 된답니다. 육아는 신선하고 향기로운 노동임에도 그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그러니 엄마들의 육아를 남자들은 물론 아이 엄마들조차 신성한 노동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사는 인근에 만화작가 한 분이 살고 계십니다. 마침 그분의 아이와 제 아이가 잘 어울려 우리네 남자는 같이 아동극도 보고 놀이터도 가고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어쩌다 놀이터에 나가보면 아빠들은 없고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노는 데 우리는 거기에 섞여 놀기도 하지요. 그분이나 저나 딱히 하는 일이 뭐라고 밝힌 상황이 아니다 보니 아이 엄마들 시선에 우리 네 남자는 ‘노는 남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분과 간혹 육아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고 아이들이 겪은 어린이집 이야기를 화제 삼아 이야기도 나누는데 그 역시 아이 엄마들이 보기에는 신기했을 겁니다.

고정관념에 젖어 살았다면 우리도 아마 아이들과 놀지 못했겠지요. 노는 남자로 비춰지든 그렇지 않든 분명한 것은 육아는 분명 남자와 여자 공동의 몫입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맞벌이하면서도 훌륭하게 육아를 해결해 내는데 남자라고 못할 법은 없지요. 중요한 것은 아빠와 아이의 관계가 다른 여느 아이들보다 더 끈끈해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자라온 어린 시절을 아이에게서 보기도 하고 아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기도 합니다. 덤으로 세상을 옳게 살아갈 나름의 원칙과 진실 같은 것도 세우게 되지요.

그러면서 저도 자란다는 걸 느낍니다. 정상적으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아빠들에게는 힘든 일일 겁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만 할애하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할 수 있는 노동을 통해 당신의 순수함을 재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출퇴근하는 남자들, 힘들겠지만 아이는 분명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당신만의 창을 열어주는 문지기라는 걸 잊지 마시길.

전 민 식 소설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