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마을가꾸기

브르통은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에 열어놓는 것”이라 했다.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마음이다. 그 세계 중에 마을이 있다. 사막이나 빙산의 계곡과 달리 마을은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어 보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가고 싶은 마을이 있고 오랫동안 추억으로 남는 마을이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마을은 그만큼 사람과 마을이 낳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는 마을도 있다.

한국의 마을은 이런 점에서 가고 싶거나 기억에 남는 마을을 잃어가고 있다. 개발이란 명목 아래 자연과 이야기가 소멸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재개발과 신도시 개발은 이러한 모습의 전형이다.

마을가꾸기 사업이 대도시 재개발과 함께 새롭게 지방 도시 개발의 모형으로 부각되고 있다. 마을가꾸기 사업이 제2의 새마을 운동이 아닌 것은 틀림없다. 빈곤 도시를 근대형 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역사적 흔적, 다시 말해 사람과 마을 이야기를 지워 버린 것을 기억한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간판을 획일적으로 바꾸고, 도로 포장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마을 가꾸기 사업을 이해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새로운 간판이 들어서는 순간 옛 간판이 말하는 이야기는 사라지고, 포장으로 길을 덮는 순간 자연의 촉감은 느낄 수 없다. 스러져 가는 담에 벽화를 그리고, 새로운 조형물을 설치한다고 해서 마을이 가꾸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색 바랜 벽화는 칙칙하고 어설픈 조형물은 흉물이 된다. 걸어서 자신을 세계에 열어 놓는 다는 것은 역으로 그 마을이 말을 걸어오는 것인데 마을이 들려 줄 이야기가 없다면 걷는 의미가 있겠는가? 문제는 거창한 고담준론이 아니라 사근사근 속삭이는 때 묻은 정감 같은 것이 마을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성은 획일성과 다르고 이야기는 사소한 것조차 의미가 있다. 일반성을 넘어설 때에는 각별하다. 개성이 있고 사소하지만 남다른 이야기가 있을 때에 걷고 싶은 마을이 된다.

이러한 마을은 관광과 경제적 목적을 위해 개발된 마을 보다는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삶의 만족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마을이다. 주민이 마을의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마을을 아끼어 이야기가 쌓여가는 마을이다. 그런 마을이 될 때에 걷는 자가 마음을 열어 놓을 것이다.

이 철 순 양평군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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