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이야기꾼이 19세기 이야기꾼 일생을 되짚어본거지"
-TV에서 볼때 보다 훨씬 젊어보이세요.
아직 볼만하죠?(하하) 누가 날 보고 칠십이라고 믿겠어. 요즘 유행하는 100세 시대 계산법으로 칠십이란 나이를 계산해보면 이제 마흔 아홉살인데, 마흔 아홉으로 보이지?(하하)
-칠순의 나이에도 쉬지 않고 소설을 쓰는 그 힘이 놀랍습니다.
요즘도 꾸준히 헬스하고 있어. 중학교 때 수영반, 고등학교 땐 등산반에서 활동했으니 건강 하나는 걱정 없지. 소싯적엔 한강에서 2~3시간씩 수영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등단 50년이라니.
-고등학교 때 등단했으니 올해로 딱 50주년이네요.
경복고등학교 재학 시절, ‘입석부근(立石附近)’으로 사상계의 신인문학상에 입선했어. 50년, 사실은 뒷간에 갔다왔더니 인생이 다 갔어. 뭐든 한 분야에서 10~20년을 하면 달인 소리를 듣는데 글쓰기는 달인이 없구나 싶어. 작가로 반세기를 살았으니 지금쯤이면 이야기가 술술 튀어나와야 하는데 이번 작품 쓰면서도 애 먹었어.
-애를 먹어요? 엄살 같은데.
내 별명이 ‘황구라’지만 쉽지 않았어. 하루에 10매씩 썼는데 어떤 날은 하루에 열시간씩 품을 들였다니깐.
-반세기 문학인생을 되돌아보면 개인 황석영의 삶이 단 한 순간도 평범했던 적은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변화의 과정을 크게 3번 겪었어. 베트남전 참전과 광주 민주화항쟁, 마지막으로 방북사건과 감옥생활로 정리할 수 있지.
베트남전쟁 참전 이후 1974년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돌입해 ‘객지’,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 전반기 문학은 비판적 리얼리즘이 두드러졌어. 1989년 방북해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해 방북사건으로 7년형 선고받았어.
1998년 사면 석방됐고. 그 후 장편 ‘오래된 정원’, ‘손님’,‘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를 발표했어. 그러고 보니 지난 10년 동안 여성의 눈으로 소설을 썼네. 방북으로 5년간 감옥에 있다 나온 뒤 작품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 수감 생활 후엔 다양한 서사를 실험적으로 도전했고. 내가 ‘황구라’가 돼서 미안하네. 내가 한 번 이야기 하면 끝이 없어.(하하)
-대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간 단일화 관련해 적극적으로 지지했는데 결국 무산됐다. 심정이 어떠한가.
짬뽕과 짜장면이니 짬짜면으로 하자 했다. 합쳐라(단일화) 했지만 성사되지 못했지. 내 역할은 끝이 났다. 정치부 기자들 전화 받느라 바빴지. 나는 책을 팔아야 한다고 둘러댔어. 남은 기간 동안 투표 독려나 하겠다.
안철수 후보는 일찍이 역사에 없었던 대승적 헌신과 희생을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안철수의 약속’에 대해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소설의 화자는 시골 양반과 기생 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 ‘연옥’이 중인의 서얼로서 신분의 한계를 알고 세상을 떠돌게 된 이야기꾼 ‘이신통’을 찾으러 다니면서 줄거리가 이어져. 화자의 추적을 통해 전기수, 강담사, 재담꾼, 광대물주, 연희 대본가, 그리고 나중에 천지도에 입도해 혁명에 참가하고 스승의 사상과 행적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꾼의 일생 스토리야.
연옥은 이신통에 대한 연정을 한평생 마음속에 품고 원망하기보다는 그리워하지. 인내하는 우리네 전통적인 여인상을 가지고 있지만, 사라진 이신통을 찾기 위해 직접 그의 행적을 따라 길을 나설 정도로 당찬 면모를 보여주지. 우리 사회가 겉으로 봐선 포스트모던 시대로 들어온 것 같지만, 사실 내용은 근대를 못 벗어났다고 봐. 남자들이 저질러놓은 근대의 상처와 억압의 잔재를 그대로 안고 있는 거지. 그래서 어머니의, 누이의 시각으로 역할바꾸기를 시도해 본 거야.
-남자 주인공 이야기꾼 ‘이신통’은 마치 현재를 살고 있는 작가의 아바타와도 같다. 본인 이야기인가.
등단 50주년을 회고하면서 이야기꾼에 대해 쓰겠다고 작정하고 썼어. 50년을 이야기꾼으로 살아온 내가 19세기 이야기꾼이 어떻게 살았는지 되짚어본 거지. 처음에는 19세기쯤에 갖다놓고 그냥 허황된 민담조의 서사를 쓰려고 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우리네 그맘때의 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어. 19세기는 동학이 형성되면서 자생적 근대를 모색하던 때지.
-작품에서 이신통은 ‘나쁜남자’ 스타일이던데.
글을 읽는 솜씨가 신통방통하다 해서, 본명 ‘이신’이라는 이름보다 ‘이신통’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 이 인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어.
그러나 그의 행적을 통해, 19세기 말 격변의 시대에 엄격한 신분 제도로서 유지되던 유교적 사상을 뒤엎고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놀랄 만한 선언을 했던 동학(소설 안에서는 ‘천지도’라고 지칭한다)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을 스케치하면서 고통과 상처투성이의 근대를 살아가는 남자다.
21세기 시각에선 무책임한 나쁜남자지만 19세기 시각에선 근대를 살아간 사내 중 한 명이다.
-이신통처럼 작가님도 집에서 카리스마가 넘치는지 궁금하다.
카리스마는 무슨. ‘황구라’ 말고 별명이 또 하나 있어. 뭐냐면 ‘억울한 사슴’이야(하하). 나는 여성들한테 굉장히 잘해. 취사, 요리, 설거지도 잘하지. 싱크대 닦는 것도 잘한다고. 하긴 무명작가 시절에 글 쓴다고 하면 다들 웃던데. 그리고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날 보고 “권투하세요?”, “책은 더러 읽으세요?” 했었어.(하하) 날 신통치 않아 했던거지.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위트와 방대한 어휘를 자랑한다. 비법은 뭔가.
평소 실력이지 뭐.(하하) 1974년 7월부터 1984년 8월까지 ‘장길산’을 썼어. 서른 두살에 시작해 마흔 두살까지 딱 10년 동안 쓴 작품이지. 그 때 체득한 것이여. 비법은 없어. 다소 유감스러운 건 요즘 사람들은 우리 말에 대한 맛을 몰라. 그래서 일부 독자들은 이번 작품이 가독성이 좋지 않다고도 하던데.
-작가로서 50년 원없이 쓰고 사셨는데, 한이나 후회, 그런 것은 없나.
작가 50년 동안 가장 큰 회한이라면 가족을 지켜내기 못한 거. 피치 못할 나쁜 남자의 전형이었지. 앞으론 말 잘 들으며 살겠습니다.(하하)
-앞으로의 작품 세계가 궁금하다.
만년문학의 전반부 그러니깐 70~80세까지 한 10년은 청년기 때 했던 중단편을 하고 싶다. 당대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자살률 세계 1위, 출산률 최하위, 산업재해 1위, 행복지수 34위 등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의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그리고 80~90세에는 놀러 다닐꺼다. 톨스토이 말년처럼 수염도 기르고 싶다. 그런데 난 수염이 없어서. 수염을 심을까봐.(하하)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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