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인 즉 이랬습니다. 동네에 같이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 있는데 모두 강아지를 사기로 했다는 겁니다. 외동인 아들 정서를 생각해서 강아지 한 마리 사주는 게 어떨까 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반려 동물은 쉽게 취하거나 버리는 물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저는 반대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 녀석이 다른 친구들은 다 사는데 왜 자기는 안되냐고 울먹이며 볼멘소리를 하더군요.
길면 20년은 같이 살아야할 반려동물을 대형마트의 장난감 사듯 사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강아지를 키울 때 발생할 어려운 설정만 골라서 설명했는데 모두 다 자기가 하겠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안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들 녀석은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더군요. 하마터면 그 눈물에 마음이 약해져 덥석 강아지를 사 줄 뻔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잊었겠지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시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는 겁니다. 뭘 잘했으니까 강아지를 사줘라, 크리스마스 선물로 강아지를 받았으면 좋겠다, 생일 선물이 강아지였으면 좋겠다…. 그래도 그때마다 저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못 박았습니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햄스터와 장수풍뎅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사니까 덩달아 샀는데 처음 세 마리이던 햄스터는 두 마리가 죽고 한 마리만 남았고 장수풍뎅이는 살 때만 잠깐 관심을 갖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강아지와 그런 동물들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생명이 있는 동물이기에 방치할 수 없다보니 결국 제가 관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일들이기에 신경쓰지 않으면 잊고 지나칠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햄스터나 장수풍뎅이에게는 삶과 죽음이 달린 중요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강아지라뇨? 더군다나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일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고, 아내 역시 강아지 키우는 일을 썩 내켜하지 않아 제 고집대로 밀고 나갈 수 있었지요. 하지만 고집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사랑을 받지 않고, 제 때 먹이를 주지 않고 관리를 하지 않아도 쑥쑥 잘 크는 그런 반려동물들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생명에게든 사랑은 필요한 법입니다. 더욱이 강아지는 인간의 사랑이 있어야 잘 자라는 동물이지 않던가요.
무조건 강아지를 샀다가 제대로 키우지 못해 죽이거나 버리는 경우를 허다하게 보았습니다. 강아지를 사서 아이의 부모가 키워준다면 그건 강아지를 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아이가 사랑하고 키울 수 있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사 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생명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장난감 고르듯 남들 다 사니까 사는 그런 소비는 결국 생명의 소중함마저도 돈으로 사고 버릴 수 있는, 그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한 소비에 지나지 않는 일일 겁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그런 자본주의의 못된 습성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네가 강아지를 잘 키울 준비가 되면 아빠가 그때는 사 줄 수 있을 거야.”
결국 아들 녀석과 합의를 했습니다. 12살이 되면 사주기로. 그 정도 나이라면 생명의 소중함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나이라고 보았죠. 그때 가면 아들 녀석이 잊어버릴 법도 하지만 그 나이가 되면 일부러라도 강아지 한 마리 키워보려고 합니다. 생명을 기르는 일에는 책임과 의무가 필요하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도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게 없겠지요.
전 민 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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