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실천적인 고민이 필요할 때

협동조합운동의 세계적인 석학인 이탈리아의 자마니 교수 부부가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저를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한번 만난 적이 있는 터라 반가운 마음으로 행사에 참가했습니다만 살짝 걱정되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협동조합 연수를 떠날 당시 예상치 못했던 얘기들이 들려왔습니다. 협동조합으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볼로냐나 스페인의 몬드라곤에서 더이상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목적이 배움인지 관광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많고, 자체적으로 경험을 교류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도 연수 코스 중 일부가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야박함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저럴까하는 마음에 찔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한국을 찾는 협동조합운동의 저명한 인사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자마니 교수 이외에도 스페인의 몬드라곤, 캐나다의 퀘벡 등을 대표하는 사람들도 한국을 찾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의 노동자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은 올해만 벌써 여섯 차례 왔다고 했습니다.

협동조합이 발달한 외국 사람들을 초대해서 우리나라에 협동조합을 알리는 일이니 좋은 일입니다만 조만간 이제 좀 그만 부르고 당신들끼리 잘해보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지레 걱정을 해본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없어 정부에서 특별법으로 허용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올해가 UN이 정한 협동조합의 해로, 자연스레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여기에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얘기한대로 협동조합이 빈곤을 낮추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독특하고 가치 있는 기업모델이라는 점이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지요. 이것이 작년 12월 한미FTA의 강행처리와 야당의 국회 등원거부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협동조합의 첫 번째 가치는 ‘자조’, 즉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공제협동조합도 노숙인, 쪽방촌 주민, 수급자 등 우리 사회의 가난한 이들이 모여, 출자를 하고, 이렇게 모인 돈으로 긴급한 생활자금을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외국의 경험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은 어떤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를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보다 실천적인 고민이 중요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병학 경기광역자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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