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故최고은이 떠난 도시와 예술인복지법

2011년은 혹독한 추위로 시작됐다. 그 해 정월 29일 안양시 석수동 단칸방에서 32세의 한 시나리오 작가가 사망했다. 고(故) 최고은 작가다. 유망한 젊은 예술가의 죽음은 비슷한 처지의 예술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사회적 관심은 일명 ‘최고은 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 법’ 제정에 불을 지폈다. 산고(産苦) 끝에 ‘예술인복지 법’은 이달 1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2009년부터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던 ‘예술인복지 법’은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배제된 예술인들이 창작에 집중하도록 국가가 안전망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발의 당시에는 이런 취지가 반영되는 듯했다. 예술인복지재단을 만들어 이른바 ‘4대 보험’을 예술가들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논란 끝에 확정된 법령에는 복지재단 운영재원 확보 방안이 빠져 있다. 게다가 잔뜩 기대했던 4대 보험 혜택도 물거품이 되었다. 고작 산재보험만 적용하되 그나마 100% 본인부담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법의 제정 취지와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시행을 며칠 앞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필자가 안양시에서 둥지를 튼 올해 3월은 故최고은 작가 1주기 후였다. 최 작가가 유명을 달리 한 곳에서 문화재단의 중책을 맡게 된 심경은 무거웠다. 고인의 죽음을 교훈 삼아 안양지역 예술인을 위한 창작활동의 좋은 토양을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술인복지법의 향방과 관계없이 말이다.

 

이웃도시 성남은 아마추어 예술동호인 네트워크인 ‘사랑방문화클럽’의 천국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안양시는 ‘프로 예술인의 낙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의 성남에서 첫 성과는 안양시의 젊고 패기 넘치는 예술가와 원로 예술가들이 뿜어내는 예술 향기가 창조도시로 가는 초석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여, 그 첫 단계로 지난 7월 문화정책실을 신설하고 참신한 인재를 발탁한 뒤 안양시에 거주하는 예술인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마무리했다.

‘예술인복지 법’ 제4조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실상 기초 자치단체 문화재단이 예술인 복지를 위해서 직접 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없다. 다만 문화재단은 지역 예술인이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도록 판을 깔아주고, 예술혼을 불태울 대상을 찾아 주며, 그들이 자긍심을 갖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고독한 창작자이자 존경받아야 할 지역 예술가를 지역사회가 품지 못하고 끝내 별리(別離)의 아픔을 되풀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재천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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