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질병에 대한 방책들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 사람들의 으뜸 소망이다. 어느 문인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아프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아픈 것에 대한 염려가 크다보니 그에 대한 가치관이 인류 역사에 따라 변화하고, 그 해결책 또한 다르기 마련이다.

백만년 전 인류는 혼자서 또는 가족 단위로 살면서 아프고 배고프다는 두 가지 사실에 직면했을 때 우선은 먹어야 사는데 수렵·채취를 못하다보니 저축에 대한 필요성을 먼저 깨닫는다. 그 결과 수렵·채취의 산물들을 모아두고 필요할 때 사용하는 방책을 선택했는데, 오늘날 싱가폴의 적립기금제도나 미국의 민영의료보험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가입이 강제되고 후자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기본적 가치관은 질병에 대한 자기 책임이다.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부족사회에서는 족장은 부족의 중요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것은 신이나 혼령 등 비가시적불가촉 영역으로 보고 매개자(엑소시스트)의 역할을 하게 된다. 부족원이 아플 경우 신의 분노나 악령이 끼었다고 볼 때는 부족에서 황야로 쫓아내고 경우에 따라 죽이기까지 하였다. 오늘날 문명사회에서는 제거라는 방책은 사용되지 아니하고, 전염병 예방과 환자보호를 위해 수용이란 방책을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전염병환자 격리 수용제도이다.

 

사회단위가 커져 왕의 시대(절대 권력 시대)에서 ‘아픈 것’은 불결·나태의 탓이거나 체제에 대한 위협요소 내지 불쌍한 것으로 간주돼 제거나 방기하는 징벌적 수단을 썼다.

신과의 매개자나 불쌍한 것으로 보게 될 때 수도원에서의 보호 치료 즉, 자선치료라는 방책이 널리 적용되었고 오늘날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자선병원의 뿌리다. 당시 아픈 사람을 보호, 구휼, 치유하는 은급을 베풀었던 것이 오늘날 국가보호제도로 발전하여 영국 전국민 무상의료제도나 우리나라 무료 의료급여제도가 대표적 방책이다.

시민사회로 발전하고 과학의 영향으로 질병에 대한 시각은 전염, 사회적 책임, 사회생산성 저하라는 측면으로 정립되었다. 전염병이라는 측면에서는 국가보건제도가 사회적 방책으로 적용되고, 사회책임 측면에서는 사회연대 방책으로서 사회보험제도가 출현하였는데 독일, 프랑스, 한국 등 선진 OECD 여러 나라에서 채택한 건강보험제도가 그것이다.

이렇듯 질병에 대한 가치관이나 방책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고,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므로 유일한 절대선이 달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OECD에서 세계 일류로 평가받고 미국도 벤치마킹하는 자랑스러운 제도인 만큼 근간을 흔들지 말고 개선·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최유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수원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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