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대천항에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는 원산도에는 서해안 유일의 낙도 중학교인 원의중학교가 있다. 13명의 교직원과 전교생 18명이 재학 중인 이 학교에서 영어뮤지컬 동아리를 만들고자 하니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섬 학교의 특성상 문화적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어서 주기적으로 섬에 들어와 뮤지컬을 만들어 줄 전문 극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원들과 회의를 하고 간단한 공연을 만들어 원산도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곳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과 태도는 육지 학생들의 그것과 확실히 달랐다. 즉각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쉽게 지루해하며 반응 속도가 빠른 육지 학생들과 달리 원의중학교 학생들은 정이 많고 끈기가 있지만 자신의 감정표현에 소극적이었다. 이 학생들과 한 달에 한번 만나 뮤지컬을, 더구나 영어 뮤지컬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이 될 것인지 단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반대하는 단원은 없었다.
대본, 안무, 노래, 대사 등으로 역할을 나누고 교육을 시작했다. 공연이라는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 중심의 즐기는 뮤지컬 체험을 목표로 삼았다.
여름방학 중에는 광주시청소년극단 학생들과 함께 2박3일 뮤지컬 캠프도 같이 했다.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번 가을, 원의중학교 학생들이 학교 축제에서 뮤지컬을 공연한다. 짧은 연습기간 탓에 완성도 높은 멋진 공연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되는 훌륭한 연극적 체험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우호적인 관객(학부모)들로 객석이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공연에 초대된 학부모들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공통된 특징이 있다. 혹여 실수할까 봐 가슴 졸이는 분, 별로 웃기지 않는 장면에서 크게 웃는 분, 지나치게 감탄하는 분 등 다양한 반응 속에는 자식에 대한 대견함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무대 위에 선 자식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특별한 느낌을 갖게 된다. 자신이 낳고 길러온 현존재(現存在)로서의 자식의 모습과 자식이 창조해 낸 허구적 인물(배역)이 중첩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자식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만을 보아온 부모가 연극을 통해 창조된 자식들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서 자식을 훨씬 깊게 이해하게 된다.
연극은 특정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다. 연극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그 자체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교육 수단 중 하나이다. 섬 중학생들의 뮤지컬 공연이 다가오면서 원산도 주민들과 함께할 작은 무대가 무척 기다려진다.
이기복 광주시연극협회장 청석 에듀씨어터 대표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