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시험을 볼 때마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기를 썼습니다. 대학입학시험을 앞두고는 아버지께서 재수는 안 된다고 빠져나갈 길을 꽉 막아버리는 바람에 기필코 합격해야만 했습니다.
군 훈련소에 있을 때 교관이 선착순 달리기를 시켰습니다. 저만큼 보이는 언덕 꼭대기까지 뛰어갔다 오는 것이었는데 10등 안에 못 들면 한 번 더 갔다 와야 했기에 필사적으로 달렸습니다. 마침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어서 한바탕 넘어져 팔에 피가 줄줄 흐르면서도 순위 안에 들었습니다.
30여 년 전의 일을 새삼 끄집어내는 이유는 요즘 읽은 책 때문입니다.
물리학자이자 생명사상가인 장회익 선생은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면서 꼭 합격하게 해달라고 하지 않고, 자신이 적합한 사람이라면 시험에서 실수만은 하지 않게 해달라고 했답니다. 대학은 스스로에게 최선의 학습수단을 마련하는 것이었을 뿐,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가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장거리 경주를 하면서는 본인이 1등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있던 사람을 떠밀듯이 함께 뛰면서 끝내 선두를 빼앗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남을 제치고 앞서나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잘난 것도 별로 없지만,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으로 비교적 제 안에서 평화를 잃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창피해서 혼자 있으면서도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살면서 경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상대방을 누르고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이 더 중요하겠지요.
대통령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며칠 전에는 세 후보가 마라톤대회에 참석해서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들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보다 상대방이 되면 왜 안 되는지를 입증하는 일에 더 열중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쟁자의 존재를 의식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후보들의 모습과 그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하는 우리 모두의 성숙함을 기대해 봅니다.
이병학 경기광역자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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