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서 퇴임하고 청소년 연극교육과 관련된 일을 구상하고 있던 필자에게 연극을 활용한 청소년 힐링캠프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로 부각된 학교폭력 관련 캠프였는데, 그 대상이 피해학생이 아니라 가해학생이라는 것이다.
전국의 학교폭력 가해학생들과 그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이 캠프의 운영방식은 “학교폭력은 비 도덕적 범죄행위이므로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마라…”는 식의 훈육(訓育)이 아니고,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예술행위를 통해 몸과 마음을 열고 마음껏 놀게하면서(play)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도록 하는 열린 방식이었다. 독특한 것은 무대 위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든 연극(뮤지컬)으로 자신들의 문제들을 치유(힐링)한다는 점이다.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일방적인 훈육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활의 경험에서 알고 있다. 캠프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3박4일 간의 기초캠프에서 몸과 마음을 열게 되고, 자신들의 처지와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노래로, 글로 표현한다.
처음부터 그들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의 표현 속에는 반성보다 분노가, 믿음 보다 불신이, 자발적인 의욕보다 수동적인 무감각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서서히 무대화가 이루어지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분노에 당사자가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무대는 행위를 하는 자(배우)의 공간이지만 지켜보는 자(관객)를 전제하고 있다. 관객은 배우와 교류하면서 환호를 지르기도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냉정한 반응을 보인다.
상호소통의 무대 메카니즘을 경험하면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일방적인 주장과 표현들을 다듬기 시작한다. 피해학생과 부모에 입장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고, 학교로 불려와 사과하는 자신의 부모가 되기도 하면서 더러 눈물을 글썽인다.
자신들이 만든 어설픈 대본이지만 기초캠프의 성과로는 충분하다. 그들은 토요휴업일을 이용한 세번의 추수관리와 심화캠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기초캠프에서 자신들이 펼쳤던 이야기들을 충분히 되새김질하고 모인 아이들은 보다 성숙한 자세로 자신들의 작품을 다듬기 시작할 것이다.
교사들은 철저하게 그들의 작업을 인정해주고 적절한 조언으로 의욕을 고취시키면 된다. 무대가 주는 즐거움을 맛 본 학생들은 이미 치유의 과정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3박4일간의 제1기 캠프가 끝나고 제2기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연극이 청소년 인성교육에 얼마나 좋은 도구인지, 무대가 인간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 새삼 확인하고 있다.
이기복 광주시연극협회장 청석 에듀씨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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