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한국의 뉴햄프셔’와 문화

안양의 문화정책을 맡게 된 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이른 봄에 부임했는데 벌써 가을이 깊다. 그사이 수많은 안양시민을 만나고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크고 작은 행사에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했다.

이런 과정에서 받은 안양에 대한 이미지는 독특하고 강렬했다. 완고한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변화에 대한 욕구가 크면서도 지역사회의 안정감은 묵직했다. 안양(安養)이라는 도시 명칭 그대로 안정적이며 풍요로운 것은 다양한 구성원들 간의 조화로움에서 비롯됐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런 느낌을 뒷받침하는 듯, 선거 때마다 대부분 언론은 안양을 일컬어 ‘한국의 뉴햄프셔’라 한다. 대통령선거는 물론 각종 선거 때마다 안양시의 투표 결과는 곧 전국의 투표 결과와 일치하거나 매우 근접했기 때문이다.

미국 북동부의 뉴햄프셔 주 투표 결과가 미국 전체 선거 결과와 매우 근접한 것처럼 안양시가 꼭 그렇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사들은 전국 규모의 선거에 앞서 안양시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따로 실시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표의 향방을 미리 가늠하는 데 안양시가 최적 조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양시가 ‘한국의 뉴햄프셔’라는 별칭을 얻게 된 데는 시민사회의 구성이 전국 표준에 근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주민들로 구성된 수도권 도시답게 시민의 출신 지역 분포가 평균적인 것은 물론, 주민의 소득 수준, 학력, 연령 등도 전국 평균에 가깝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안양시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인 셈이다.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시민의식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볼 때 안양시의 문화예술 정책을 맡고 있는 필자 입장에서 보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안양이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면 안양은 각종 문화예술 사업의 가늠자 또는 리트머스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장하면, 안양에서 되는 사업은 전국적으로 될 수 있을 것이며, 안양에서 안 되는 사업은 같은 영역에서 안 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이는 전국 평균이라는 제한적 테두리 안에서 볼 때 그렇다는 이야기지만 필자로서는 꽤 무겁게 와 닿는 이야기다. 안양이라는 도시 자체가 한국사회의 축소판 그대로라는 건 결코 가벼이 여길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안양은 볼수록 매력적인 도시다. 마치 안양천처럼 늘 조용히 흐르면서도 그 내면은 매우 역동적이니 말이다. 그런 안양시가 필자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과 과제에 어찌 답해야 할지, 한시도 마음 놓을 겨를이 없다.

노재천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이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