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아버지란 이름으로

“아빠,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비록 몇 달이지만 오늘 딸아이가 미국으로 갔다. 미네소타병원 메이요 클리닉센터에서 연수를 받을 예정이지만 어쩌면 그곳이 그녀의 평생 직장이 될지도 모른다.

딸이 떠나는 날 아내도 나도 하루 종일 아무 말 없이 마당에 나가 꽃만 다듬었다. “공항에 나갈 걸 그랬나요?”,“몇 달 있다 다시 올 텐데 뭘. 사위도 있고.” 하지만 딸아이가 섭섭했을지도 모를 일에 마음이 편치 않다. 마음 한구석이 구멍 난 듯 허전하고 우울하다.

녀석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경희대학교에서 세미나가 있어 간 적이 있다. 모처럼 서울에 온 김에 딸에게 용돈이나 주고 가려고 전화를 했더니 마을버스를 타고 몇 분 후면 올 수 있단다.

그때 딸아이가 왔다. 허름한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고 덜렁대고 오는 녀석, 매달 많지는 않아도 성의껏 돈을 보내주지만, 방세에, 차비에, 먹고사느라 빠듯한 녀석의 형편을 알 만하다. 강사료로 받은 돈을 봉투째 주고 좋아하는 딸아이를 두고 내려오는 길 괜히 부아가 나고 마음이 심란했던 적도 있다.

 

아빠가 변변한 뒷바라지 한번 해주지 못했는데 녀석은 출가하고 이제 더 큰 길로 떠나려 한다. 섭섭한 내색 한번 안 하고 녀석은 늘 우리를 위로하며 살더니 오늘 출발 전 문자를 날렸다.

“아빠, 엄마 잘 둔덕에 딸래미 미국 갑니다. 몇 달 후딱 갔다 와서 다시 들어가 김 서방이랑 자리 잡히면 잘 모실 터이니 아프지 마시고 재미나게 사세요.- 예쁜 딸”

잠시 후 전화벨이 울리더니 집 위치를 묻는다. 꽃배달 서비스라는데 딸과 사위이름으로 큼직한 꽃바구니 하나와 카네이션 두 송이가 왔다. 마침 놀러와 있던 이웃이 부러운 눈초리로 “교수님 내외분은 복도 많으셔~” 하신다. “맞아요~” 대답은 하지만 아내의 얼굴에 그늘이 보인다.

딸에게 나는 과연 어떤 아버지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훌륭한 아버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저 평범하고 어쩌면 우유부단한 못난 아비일지 모른다. 착한 아버지? 그것도 아니다. 적어도 착한 아버지는 아이의 가는 길을 미리 걱정하고 바르고 훌륭한 길로 잘 가도록 인도하여야겠지만 나는 그저 녀석의 자라는 과정을 묵묵히 보기만 하여 왔다.

그래. 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세상의 아버지이다. 그런데 딸아, 그거 아니? 아버지는 그 사실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것을. 세상의 아버지는 모두가 훌륭하고 착하고 또 아름다운 아버지라는 사실을.

지금처럼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보는 너를 아빠는 영원히 지켜볼 거야. 딸아~ 아빠도 너를 많이 사랑한다!

김남윤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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