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아시아계 민족 중 북몽골, 그 가운데도 신 시베리아족의 알타이족에 속한다고 한다. 이들은 알타이족의 이동 과정에서 일찍부터 갈라져 나와 만주의 서남부, 요녕지방에 정착하여 농경과 청동기문화를 발달시켰으며 그 가운데 한 갈래가 한반도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선주민인 구 시베리아족을 정복, 동화시켜 오늘날의 한민족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목축 위주의 유목생활을 하였으나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차츰 농경 위주의 사회로 전환하였다.
주(周)나라 초기부터 중국 문헌에 나타나는 숙신(肅愼)·조선(朝鮮)·한(韓)·예(濊)·맥(貊)·동이(東夷) 등은 바로 한민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민족은 초기 단계에 여러 읍락국가(邑落國家)를 형성하다가 읍락국가 연맹체로 발전하는데 고조선이 바로 그 연맹의 맹주국(盟主國)이었다. 고조선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는 정치적·사회적 공동체를 이루면서 하나의 민족 단위로 발전하였고, 공통어인 한국어도 형성되었다. 이와 더불어 한민족은 근 5천 년 전에 출현한 단군, 단군왕검을 민족의 시조로 모시게 되었다.
얼굴, 피부색 다르더라도…
이처럼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과 더불어 현재까지 전하는 단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 후반 고려시대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 고조선 조의 내용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의 내용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최초의 국가를 창건하던 역사적 경험을 신화의 형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편 단군신화는 신화 형성기의 역사적 정보 외에 그것이 민족의 정체감을 확립하여 주는 상징적 근거의 기능도 하고 있다. 한민족이 하나의 통일공동체라는 의식은 삼국유사에서 최초로 정리되었고, 이것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계승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 우리 역사를 되돌아볼 때 배달민족, 백의민족을 앞세워 강력한 단일민족의식을 요구한 시대가 있었다. 우리 모두는 단군할아버지의 자손이므로 그 분의 자손임을 잊지 않고, 일체가 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려후기 몽골족 원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100년 전 일제의 식민 야욕에 저항하기 위한 정신적 바탕이 바로 여기에 근원을 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성은 본래 배타적, 폐쇄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민족의 특성은 개방성,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통합성과 독창성에 있었다. 조선시대와 달리 고려시대에는 건국 초부터 거란을 제외한 모든 민족 출신 귀화인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다양하면서도 독창적인 문화와 정신을 꽃피울 수 있었다. 종교에 있어서 도교와 불교, 유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청자와 금속활자 등 세계적인 수준의 문화를 창출할 수 있었다.
정신·문화 공유하는 것, 진정한 민족
세상에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똑같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부모자식, 형제지간이라 해도 똑같은 얼굴, 똑같은 피부, 똑같은 눈동자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정신과 문화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넓게, 그리고 멀리 보아 그것이 진정한 민족일 것이다. 수많은 나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는 오늘, 우리 시대의 단일민족은 다시 고려시대로 돌아가 거기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박옥걸 아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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