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좋은 시절도 잠깐, 지난해 이맘때 우리 동네는 참혹한 수해를 겪었다. 밤새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 끝에 산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아침, 저녁으로 싱그러움을 주며 오래된 친구처럼 포근하던 숲이 하루 아침에 와르르 무너질 줄은 꿈에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인명피해가 난 집도 있었는데, 그 같은 불운만은 피할 수 있어 감사한 맘이었다. 또한 질퍽한 동네를 성심껏 치워주는 군인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큰 은혜를 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진흙 벌 속에서 상처 입은 꼴로 드러난 주변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정말 더 처참했던 상황은 우리 동네가 겪은 불행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더 멀어지면서부터 시작됐다.
폐허 속에서 아침마다 노란 스쿨버스를 타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나마 외관만 건사한 정자에서 어르신들이 넋놓은 모습으로 파손된 놀이터를 물끄러미 보실 때마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천벌을 받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특이했던 경험은 점점 그 같은 불행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 즉 나도 뭔가 원죄가 있어 천재지변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범죄 피해
심리학자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은 근거없이 세상은 공평하다(just world)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특정 개인에게 불행한 일이 벌어지면 뭔가 잘못이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불행이 찾아왔을 것이라 판단한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책임없는 불운에 대해서도 스스로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오귀인의 경향도 있다고 한다. 임상적으로 보자면 이와 같은 잘못된 책임감이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고도 한다. 즉 자신과 관계없는 불행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불행이 자기 탓이라 생각하고 자책한다는 것이다.
2011년도 여름 벌어진 산사태는 이 모든 심리현상을 필자에게 경험토록 했다. 결국 산사태의 피해는 출퇴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동네로의 이사를 주장한 어리석음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다. 이같은 생각은 최근까지도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아마도 평상시와 다름없는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끔찍한 범죄에 노출된 피해자들도 아마 필자와 같은 심정이리라. 사실 본인들의 잘못이 아닌 불행을 두고서, 주변인들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잘못한 것을 찾으려 애써 노력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명확히 해야 하는 일은 2011년도 우면산에 내린 폭우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희귀한 사건이듯, 범죄피해 역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천재지변에 대한 방재시스템이 있느냐하는 공동체의 책임처럼 범죄에 대한 예방시스템도 꼭 있어야 하는 문제일 뿐, 개인의 재량권은 그 어떤 대목에서도 주요 변수가 될 수 없다.
예방시스템 잘 갖추는 것이 대책
어제도 폭우가 내려 잠을 설쳤다. 혹시 산에다 쌓아둔 돌더미들이 휩쓸려 내려오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밝게 갠 아침, 동네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몇 개월 수해 예방책이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범죄도 역시 이렇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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