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국회 개원 유감

처음엔 그냥 경청하려고만 했다. 이제 막 배지를 달은 초선의원이 세비 반납을 논의하는 의원총회에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면 지고지순하신 선배의원님들이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오다가도 국민 앞에 진심으로 반성해야한다는 대목에선 심각해지기를 몇 번인가 반복하다보니 혈기가 발동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신청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일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지 세비를 반납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가 공전되면 세비도 받지 않겠다고 한 총선공약은 지켜야한다.’ 이런 요지로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기왕에 반납할 거면 깡그리 다 반납합시다!’ 라는 말로 발언을 끝냈다. 덕분에 동료의원들 사이에 내 별명은‘깡그리 의원’이 됐다.

이번 국회개원협상을 지켜보면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국회만이 법정 개원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매번 늦어지는 국회개원을 강제하기 위한 입법안도 서너건 발의되었는데 이 역시 다른 나라에선 찾아 볼 수 없는 법이라 한다.

국회개원을 볼모로 한 ‘원구성’ 협상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 시작은 24년전인 제13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제5대 국회에서 12대 국회까지 상임위원장은 다수당이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구조’였다. 그러던 것이 제13대 국회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했다.

이 때문에 여·야는 의석수를 바탕으로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원구성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24년간 단 한 차례도 법정기일 내에 원구성을 마무리짓지 못했다고 하니 더이상 합의만 기대할 수도 없는 듯하다.

현재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우선 선호할 수 있는 방안이 대안으로 유력하게 제시되어 당 차원에서 법안 내용을 다듬는 단계에 있다. 즉, 교섭단체 의석비율에 따라 상임위원장 수를 배분하고, 다수당부터 상임위원장직을 먼저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국회 원구성조차 법으로 명문화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반성이 없을 수 없다. 법학통론 맨 앞장에 쓰여 있는 ‘법은 최소한의 것이다’라는 경구의 의미가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함진규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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