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장마, 오신다

‘비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내린다’

프랑스의 낭만파 소설가 마르탱 파주는 자전적 에세이 ‘비’에서 그렇게 썼다. 그의 글은 표현의 절묘함이 가히 마술적이다. 철학과 역사, 예술을 달콤하게 버무려내는 작가’라는 평가가 그에게 붙은 수식어이다.

내리는 비가 옷을 적시다가, 옷 속을 헤짚고 살갗을 적시다가, 드디어 마음까지 적시는 과정이 사랑의 진도와 비슷하다는 것인지, 사랑이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것이 비의 정서와 비슷하다는 것인지, 그 마술적 표현의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그 의미는 헤아릴만 하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한가지 소망을 갖는다. 비가 세례를 하듯 세상의 허물을 씻어 내렸으면…. 이를테면 세상의 척박함, 세상의 혼탁과 욕망, 세상의 비논리, 세상의 두려움, 세상의 무질서, 세상의 허망함….

비가 내린다. 장마가 시작됐다. 천둥이 울리고 번개도 친다. 온 세상이 눅눅하고, 기분마저 젖어서 하염없이 가라앉고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소나무는 잎새에 빗방울이 눈물처럼 맺혔다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장마는 여러 날 동안 계속 내린다고 해서 임우(임-(雨 아래 林자)雨)라는 표현이 있다. 장우(長雨)라고도 한다.

좀더 낭만적인 표현으로는 ‘매실이 익어가는 무렵에 내리는 비’ 라는 뜻에서 매우(梅雨)라고도 부른다. 매우 라는 표현은 일본(바이우), 중국(메이우)에서도 쓰이고 있다. 예전 선비들은 이 매우가 내리는 하늘을 매천(梅天)이라고 했다. 그들의 문학적 내공의 그 깊이가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어로 장마는 바이우 말고 쯔유(つゆ)라고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쯔유는 간장이라는 뜻으로도 읽힌다는 점이다.

초가집이 많았던 시절, 낡은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지지랑물이라고 했다.

가을 걷이가 끝난 후 대개는 새 짚으로 지붕을 이어 올리는데 농사를 못한 집은 새 이엉을 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래 된 지붕은 썩어서 비만 내리면 썩은 물이 추녀로 떨어지는데 그 빗물이 영락없는 간장색깔이었다. 요즘도 남쪽지방에서는 간장을 지랑이라고 한다.

일본의 쯔유라는 표현도 역시 짚으로 이은 오래된 지붕이 썩어서 빗물에 흘러내리는 것이 간장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닐지 어림해 본다.

순 우리말로는 장마를 ‘오란비’라고도 했다. 오래 내리는 비 라는 뜻으로 조선 중기까지 썼다고 한다.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이나 그 어감이 친근하고 소박해서 되살려 써도 좋을 법 하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그러셨다. “옷은 가슥 덕분에 입고, 밥은 하눌님 덕분에 먹는 거여.”

옷은 마누라가 지어주면 입을 수 있지만 밥은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지어서 먹을 수 있게 된다는 얘기였다. 가슥은 여인네를 뜻하는 경상도 지방 사투리 가시내의 원형인 것 같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산책을 나서는데 유난히 개구리 합창이 요란한 곳을 지나게 된다. 가물어서 올챙이가 부화를 못해 개구리도 사라졌다는데 용케도 살아남은 개구리들이 승리의 합창을 소리 높여 부르는 것 같다. 산자락 아래 괸 물이 올챙이를 부화시켰고, 다행이 개구리로 성장을 한 모양이다. 가뭄을 이기고 생명을 이은 개구리들이 새삼 신기하고 기특하기까지 하다.

장마가 시작됐으니 이제 능소화가 필 것이다. 능소화, 우중충한 장마 속에 등불을 켜듯 환한 주황빛으로 피는 꽃. 신은 참 골고루 다양하게 세상을 빚은 것 같다. 비가 내리는 흐리고 우울한 날 선물과도 같은 꽃을 피우게 했으니 말이다. 가뭄 끝에 반가운 비라지만 홍수로 피해를 입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능소화로 선물로 주신 하느님께 부탁을 하고 싶다.

신효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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