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밥 이야기

며칠 전 어느 분이 쓰신 글에서 ‘따슨 밥’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순간 왠지 심한 허기를 느끼며 오래전 어머님께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내 언 손을 잡고 호호 불어 주시며 이불 속에서 꺼내 주시던 따슨 밥이 생각났다.

아~ 밥. 가난하여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던 그 시절, 당신은 굶으시면서도 못난 막내 아들을 위해 주발에 고봉으로 담은 밥 한그릇을 명주 이불속에 넣어 두시고 기다려 주시던 어머니.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지으시는 가마솥에서는 남몰래 흘리시는 눈물만큼이나 진한 밥국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서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호승님의 ‘밥값’이라는 시이다. 시인도 나만큼이나 어머님의 속을 썩였을까? 어려서는 노느라 정신이 팔려 밥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직장을 그만두고 놀 때는 가끔 전화로 “애비냐? 끼니 떨어지지 않았냐?” 하시던 어머니. 나도 지옥에 한번 다녀와야 짐승처럼 꼴값을 안하고 밥값을 할듯 하다.

 

지난 5월29일은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5주기 되는 날이었다. 피치못할 산행약속이 있어 5일 빠른 아버님 기일에 어머님 제사까지 한꺼번에 모시고 산행을 다녀왔다. 산행은 즐거웠지만 뭐가 그리 고단했던지 돌아와 정신없이 떨어져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에 인천으로 출발하려는데 아내가 밥상을 차려 놓았다. “당신, 이 밥 드시고 가세요. 어제 어머님 기일이라 내가 밤 11시30분에 따신 밥 한그릇 올렸어요.” 고맙고 미안했다.

5년 전, 당신 돌아가시고 춘천으로 돌아와 방에 있는데 아내가 형수님과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다. “형님~”, “응, 동서 고생 많았어!”, “….”, “왜 그래?”, “네, 그냥 어머님 보고 싶어서요.” 목놓아 흐느끼는 아내의 어깨를 잡으며 나도 장례식에서 참고 참았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살아생전 아내를 “작은애는 꼭 전인화처럼 이쁘고 착하구나” 칭찬하시며 대견해 하시던 어머니. 그때는 그 사랑을 몰랐었는데…. 어느새 어머니는 아내의 어머니가 되고, 아내는 또 다른 나의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 오늘 나는 참으로 목 메인 밥을 먹었다.

김남윤 한국폴리텍Ⅱ대학 남인천캠퍼스 교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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