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金보다 ‘유전자원’

국내 참외 ‘금싸라기’ 품종 17년, 일본의 사과 ‘후지’ 품종 29년, 영국의 이스트마링 회사와 마링밀턴 농장에서 육성된 사과 반세기. 앞에서 언급한 숫자들은 다름 아닌 이 품종들이 개발되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이렇게 하나의 씨앗이 개발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함께 몇 배의 땀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농업인들에게 있어 종자 하나가 갖는 의미는 생명과 같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옛 말이 있을 정도로 농업인에게 씨앗은 그만큼 중요한 존재요, 농업에 있어선 근본이 된다.

이렇듯 종자에 목숨 거는(?)데는 종자 하나가 품고 있는 가치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컬러 파프리카 종자가 1g에 9만원 정도로 거래된다니, ‘금보다 비싼 종자’라는 표현이 틀린 것도 아니다.

세계 종자시장 규모는 현재 약 700억 달러 내외로 성장속도는 연평균 5.2%로 빠르게 증가 곡선을 그리고 있다. 종자의 가치가 껑충 뛰고, 종자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이로 인한 식량안보를 꼽는다.

 

세계 각국은 식량안보의 핵심인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보존하는데 촉각을 곤두세우며 누가 더 우수한 품종과 유전자원을 확보하느냐를 놓고 총성없는 씨앗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그동안 다른 나라로 유출됐던 한반도 원산 토종 유전자원 중 상당수의 자원을 돌려받는데 성공하며 유전자원을 지키고 확보하는데 땀을 쏟고 있다.

이에 농촌진흥청도 유전자원을 보존·도입하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서고 있다. 식물 유전자원 2천773종, 19만2천777점을 갖고 있는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는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일본에 이어 세계 6위 수준의 식물 종자를 보존하고 있다. 또 농촌진흥청은 지속적으로 우수한 유전자원 수집에 힘써 2017년까지 34만4천점을 확보해 종자 보유 세계 5위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전자원은 40억년의 진화과정을 통해 형성된 인류의 자산이다. 진화를 거치며 변화하고 인류를 위해 실질적·잠재적 가치를 지닌 유전자원의 주권을 지키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값비싼 돈을 치루고 미국에서 역수입하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원래는 우리나라의 구상나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거, 아차 하는 사이 우리가 잃어버린 품종은 비단 크리스마스트리 뿐은 아닐 것이다.

손톱보다 작지만 금보다 빛나는 가치를 자랑하는 유전자원. 이것을 지켜내는 일은 현 시대를 넘어 우리 후손들을 위해 앞으로 우리가 해나가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라 승 용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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