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에서 삽니다. 지금은 새로 건설된 아파트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북향엔 해발 124m의 숙지산이 있고 동쪽으론 수원역으로 가는 큰 길을 넘어서 약 1km 쯤 부턴 비슷한 높이로 수원시 화성을 안고 있는 영산인 팔달산이 우리를 품듯 보이는가 하면 화서 전통 시장이 있어서 서민들이 살기엔 너무 좋은 아늑한 동네입니다. 그리고 우리 집 맞은편엔 서민들 생활의 가장 친근한 경제유통의 역할을 하는 신용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또 바른편엔 우리 귀염둥이들이 신나게 놀고 공부도 하면서 꿈을 키우는 초등학교가 있어서 싱그러운 미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유난히 다른 동네보다 깨끗한 것이 특징입니다. 오래된 주거지역은 대부분 생활쓰레기를 길가에 내어놓기 때문에 환경미화원들이 고생을 제일 많이 합니다. 새로 건설된 아파트나 신도시는 생활 쓰레기 처리가 현대식 시설로 되서 동네가 늘 청결하지만 이곳은 오래된 주거지역이라 대부분 전신주 밑이나 담 옆에 쓰레기를 버려서 보기에 지저분하고 악취도 나곤합니다. 제가 이곳에 이사 온지 6년 가량 되었는데 그땐 생활 쓰레기를 모으는 곳이 무려 여섯 군데나 되었지만 담 밑이나 공터 같은 곳엔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동네 전체가 다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 군데로 줄어들었는가 하면 분리도 잘 되어 있습니다. 담 옆 작은 화단 등 주차공간도 깔끔해졌습니다.
우리 동네엔 보기 드물게 키가 훤칠하신 70을 갓 넘기신 노신사가 사십니다. 어떤 땐 이른 새벽에 어떤 땐 밤이 깊었는데도 각자 집에서 내어놓은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리해서 재활용하도록 수고하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존경스럽습니다. 이 분은 얼마 전까지 시의원을 네 번이나 하시고 의장까지 하신, 말 그대로 우리 동네에선 유지 중에 유지로 꼽히시는 분입니다. 지금은 신협 이사장으로 네 번이나 선출되어 열심히 공직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벌써 오래 전에 ‘만인 장학회’를 만들어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곤 하셨는데 이번에도 신협에서 나오는 활동비 반을 선뜻 내놓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요새는 어디에나 노령의 어른들이 많이 사십니다. 저도 올해에 70을 넘기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노인들의 근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큰일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여기저기, 이곳저곳을 찾아보면 틀림없이 우리 노인들이 봉사할 수 있는 일들은 아마도 많을 것입니다. 청소나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을 기본으로 본다면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무엇이든 마을 발전을 위해서 나름대로 보탬이 될 것입니다.
제가 어느 성당에 있을 때 한 대학교에서 총장과 문교부 장관까지 역임하시다 퇴직하신 분이 신도 대표로 계셨는데 이분은 틈만 나면 성당에 와서 청소를 하고 유치원생들을 보살펴주기도 하고 사람들이 시비가 생기면 지혜롭게 해결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때 지역을 위해 큰일을 많이 하셨던 우리 마을의 큰 어른은 올 여름에도 작년에 가꿨던 것 같이 해바라기 등 여러 종류의 꽃을 후미진 곳 손바닥만 한 길옆 화단에 심을 것입니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엔 어떤 모양으로든지 살기 좋은 환경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나라에서 미처 챙기지 못하는 걱정스런 일, 예를 든다면 학교 폭력사건 등도 우리 어른들이 힘을 모으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노인들이시여! 우리의 늙음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원동력이 될 수 있음도 꼭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최재용 신부·천주교 수원대리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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