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선거권을 가진 사람들이 대통령, 국회의원 등 국가 공직에 임할 사람이나 어떤 단체, 조직 등의 대표자를 투표로 뽑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중국의 역대 왕조나 고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뽑는 과거(科擧)를 선거(選擧)라고 했다. 그래서 ‘고려사’ 선거지(選擧志)는 고려시대 과거제도의 내력이나 규정, 급제자 등 관련 기록들을 한데 모은 것이었다. 당시의 선거는 선발(選拔·많은 가운데서 골라 뽑음)이나 선출(選出·여럿 가운데서 골라냄)에 가까운 용어였으므로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전근대사회의 선거와 지금의 선거는 서로 상이한 면이 있다.
한편 서양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일부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자들에게만 참정권이 허용되었는데 이들이 모인 민회(民會)에서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뽑거나 전쟁과 같은 중대사를 결정할 때 거수, 환호, 박수와 같은 절차를 거치거나 혹은 비밀투표 형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초기 고대국가성립 과정에서 촌장들이 모여 왕을 추대하거나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한 기록들이 전하나 그 예가 드물 뿐만 아니라 상세하지 못해 실상을 알 길이 없다. 다만 화랑제도와 관련하여 집단의 구성원인 낭도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여 화랑을 추대했던 사례에서 오늘날의 선거와 유사한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선거권 행사해야 진정한 민주주의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참여 형식으로서의 선거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시민계급의 등장과 성장으로 이루어졌다. 19세기 근대사회 진입 이후 등장한 새로운 계층에게 선거권이 부여됨으로써 의회주의 정치와 대의 민주주의시대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선거권은 사회적 권리이며 동시에 공적 의무가 된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확고한 정치제도로 정착하면서 의회를 구성하는 대표의 선출행위인 선거권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졌으며, 양적·질적인 성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또한 선거권 행사의 공정성 유지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면서 제한선거로부터 보통선거로, 불평등선거에서 평등선거로, 간접선거로부터 직접선거로, 공개선거로부터 비밀선거로 발전되는 등 선거제도의 변화와 정착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선거권의 권리적 측면에서의 성장에 비해 의무적 측면에서의 과제는 아직까지도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선거권의 행사가 아무리 공정하고 완벽한 보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선거권자가 선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대의제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선거권의 권리가 엄정하게 보호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거권자인 국민에게는 주어진 선거권을 반드시 이행하여야 할 의무 또한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오늘날 싱가폴, 멕시코, 벨기에, 이집트, 오스트레일리아, 그리스, 스웨덴 등 국가에서 의무투표제를 시행하거나 선거권 불이행에 대한 제재 방안으로 벌금, 구류, 각종 불이익의 부과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하고 심지어 선거권 박탈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하는 국가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 또한 바람직한 것일 수는 없다. 선거권의 의무 이행을 독려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교 교육, 사회 교육, 언론, 홍보 등을 통한 적극적이면서도 꾸준한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투표로 잘못된 선거문화 바꾸자
우리 국민은 1948년 5월 10일 초대 국회의원 선거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동안 수많은 선거를 경험하였고, 바로 며칠 후에는 제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비뚤어진 선거문화가 도처에 널려져 있다. 그 가운데에도 가장 심각한 것은 선거권의 포기, 선거 의무 불이행 풍토라 할 수 있다. 선거권의 행사야말로 잘못된 선거문화를 바꾸는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두가 투표소로 달려가 정당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여야 할 것이다.
박옥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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