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핀란드에서 온 에르끼 야호를 만났다. 에르끼 야호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핀란드 공교육의 설계자다.
1973년부터 1991년까지 ‘교사를 믿고 학교를 신뢰하는 핀란드식 교육개혁 모델’을 다듬어 낸 전직 국가교육청장이었다. 경쟁과 차별이 아닌 협력과 지원의 교육을 성공시킨 에르끼 야호의 강연을 경청할 수 있었고, 에르끼 야호와 함께 한 원탁회의에서는 질의 응답을 통해서 핀란드 교육개혁 성공 배경과 한국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성공적인 교육모델로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핀란드 교육정책은 수 십년간 바뀌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영역은 침범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교육현장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으니 높은 자존감을 지닌 선생님들의 열정어린 가르침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으며 시장바닥에 내놓은 물건처럼 값을 매기지도 않는다. 학생들의 평가는 그것이 서열이나 경쟁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알고 진로선택의 도구라는 것을 학생들도 알고 있는 까닭에 그야말로 하고 싶은 공부를 즐기며 할 수 있으니, 핀란드 아이들의 주관적인 행복지수 또한 높다.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핀란드는 총 3회의 시험에서 연속 1위를 했을 뿐만 아니라 학업에 대한 자신감, 공부에 대한 의욕이나 흥미도 또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핀란드 교육정책 함부로 손 안돼
그런데 그 비법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과는 정반대였다.
핀란드의 아이들은 오후 3시면 학교에서의 모든 일과가 끝났고, 따로 과외를 받지도 않는다. 핀란드의 교육철학은 ‘아이들은 놀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최대한 충족시켜야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된다’ 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학생을 선택할 수 없으며, 학교 선택권은 오직 학생들에게만 주어졌다. 학교활동의 구성과 교육은 철저하게 학생들이 중심이었다. 핀란드 아이들은 평일 학습시간 평균이 4시간 22분이다.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상상해본다. 이른 시각, 0교시 수업을 위해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밥도 대충 먹거나 굶고 등교를 한다. 교실로 들어서면서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50분 단위로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공부를 한다. 쉬는 시간에는 틈틈이 학원 숙제를 한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자율학습을 위해 학교에 남거나 학원 셔틀버스에 몸을 싣는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자정이 가까운 시간, 그래도 다시 공부를 위해 책상 앞에 앉는다.
지난 2007년 ‘수학·과학 성취도 비교연구(TIMSS)’ 평가 결과 능동·창의적 학습 수준을 측정하는 자신감과 흥미도 지수에서 한국은 49개국 가운데 43위라는 최하위 성적을 얻었다.
아이들 놀권리 만들때 공부도 잘해
단편적인 지식을 주입하고 기계적으로 답을 찾는 연습만 수도 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인적인 발달보다는 대학입시를 위한 지식 축적이 학교의 목적이 되어 버린 지금, 학교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성적인가? 누구를 위한 대학인가? 교육은 국가의 근간이므로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이리저리 뿌리째 뽑아서 심을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교육을 걱정하는,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분야별로 함께 모여서 범 국가적인 교육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마치 한 그루의 좋은 나무를 국가라는 정원에 심어서 자라는 동안 옮겨 심지 않고 줄기만 가다듬으며 우람한 나무로 키우는 작업을 하자는 것이다.
오늘의 핀란드 교육도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지난한 과정과 좌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면서 말이다.
이청연 인천광역시자원봉사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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