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진화하는 공립문화시설

‘진화’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작은 필연을 정성껏 쌓아올린 곳에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동안 필자가, 업무와 관련된 많은 공립문화시설을 벤치마킹하면서 얻은 생각이다. 처음에는 관계자를 만나지 않는다. 관련된 인사의 추천이나 서적의 평판 그리고, 정보를 통해 문화시설을 방문하고, 그 시설 주변 주택가를 중심으로 돌아본다.

 

대부분 여기에서 그 문화시설이 가진 장점이나 문제점은 표출된다. 그리고 다음 방문 여부를 결정한다. 다음 방문이 결정되며 반드시 행정과 접촉한다. 행정의 균형과 문화시설이 갖고 있는 창조시설로서 융합을 살핀다.

 

그 다음은 전문직 관계자들을 만나 그들이 이끌고 있는 공립문화시설을 진화 시키고 있는 콘텐츠를 살피고, 자료를 담당자에게 요청하고 분석에 들어간다. 필자의 기준에 의해, ‘선택과 집중’을 해서 좋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공립문화시설은 많지가 않았다.

 

참으로 많은 문화시설을 방문했다. 지역지도를 달랑 하나 들고 지역민들이 그 지역의 문화시설에 대한 평가도 들어보고, 저녁에 근처의 카페에 들러 주인이 생각하는 그 문화시설에 대한 존재감도 물어본다. 대부분이 무관심이다. 어떤 경우에는 문화시설이 바로 눈 앞에 위치해 있음에도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

 

그러나 지역에서 존재감을 갖고 있는 공립문화시설은 확연히 달랐다. 매달 한 번씩 문화시설 앞 공원 근처에서 콘서트를 연다든지, 기차역 로비에서 근처의 음악당이 주관하는 콘서트를 열어서 지역민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있다든지, 공립문화시설의 예술 감독의 명성을 통한 일관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든지, 여름철 광장을 활용해 시민 오페라를 개최하여 지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야외 프로그램을 꾸준히 선보인다든지, 공립문화시설 리더의 의지에 의해, 그리고 직원들의 ‘열정’을 통해 ‘진화’를 시키는 모습은 필자에게는 배워야 되는 것이었다.

어느 공립문화시설에서 매년 개최되는 음악제에는 음악감독이 축제 기간에 매일 근처의 술집 등을 돌아다니면서 지역민과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지역 출신 예술가가 아닌 그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친근하게 지역민과 접촉하고 있었다. 또한, 연극인들의 경우, 지역민들과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고, 그들을 극단의 후원 관객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와 같이 공립문화시설은, 공공재로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감을 갖고 지역 공동체와 함께 하는 좋은 공립문화시설을 만드는 사례도 많았다. ‘진화’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닌, 작은 필연을 정성껏 쌓아올린 곳에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조경환 부평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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