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무너져가는 가족제도

지난 2월 말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40대 가장이 자신의 노부모와 아들을 살해하고 도주해 자살을 시도했다가 하루 만에 모텔에서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또한 며칠 전에는 강원도 고성에서 경매로 낙찰 받은 토지를 가족들이 팔지 못하게 한다고 어머니를 목 졸라 죽이고 팔순의 외할머니까지 흉기로 살해한 손모씨가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아직 상세한 사연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참으로 끔찍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고려나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금부터 800여년 전인 고려 인종 때 충주 인근 지방에서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관에서는 즉각 범인을 잡아 처형한 후 그 집터를 파 웅덩이로 만들었고, 당해 지역 지방관은 파직됐으며 국왕도 얼마 동안 근신하는 자세로 술과 음식을 감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처럼 조부모, 부모 등 직계 존속에 가한 패륜(悖倫)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유교 성리학 사회였던 조선시대 이전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로 오면서 인륜에 반하는 범죄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그 수법 또한 흉포화하고 있다. 최근 경찰 통계에 따르면 친족 대상 범죄는 연간 3만 건에 이르고, 이중 강력범죄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인데 특히 존속살인 건수는 2008년 44건, 2009년 58건, 2010년 66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늘어만 가는 패륜 범죄

 

그런데 존속살인범의 경우 대부분이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초범자들로 20세 이하의 청소년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성장기에 부모의 학대 등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쌓였던 분노가 폭발하면서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들 또한 불행한 피해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도래한 장수시대 안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리듯 살아가야 하는 노인들의 사정 또한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늙고 힘이 없다고 자식들로부터 사회로부터 학대나 폭행을 당하고 버림 받는 노인들이 얼마나 되며, 그 실상은 어떠한지, 이를 해결해줄 묘책은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불과 이삼십 년 전까지 만해도 우리에게는 세계인들이 모두 부러워하던 가족제도가 있었다. 영국의 문명사학자인 토인비는 물론 하버드대의 다니엘 벨 교수, 사무엘 헌팅턴 교수, 영국의 와그너 교수 등 사회학, 가족학 분야의 당대 최고 석학들이 한국 가족제도에 대하여 극찬을 하였다.

 

그들은 한국의 가족제도가 미래 인류를 살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제도라는 데에 입을 모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왜 그런 찬사를 아끼지 않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우쭐해져서 물색없이 들뜨기만 했던 것이 다였다. 어떻게 그것을 지켜가야 할지, 어떻게 발전시켜가야 하는지에 대한 숙고나 성찰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전통 가족제도 지켜나가야

조부모와 부모, 자녀 삼대가 함께 모여 사는 대가족제도는 밖에서 보는 사람들의 시각과 달리 그 안에 묻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우리에게는 물론 고통스럽고 힘든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오로지 경제발전,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전념하면서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은 주저없이 내던져버리고, 정작 가져와서는 안 되는 것들만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가족제도는 어디로 갔나. 우리 가정이,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이를 한탄하거나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그 정확한 원인과 올바른 해법을 찾는 일에 지혜와 열정을 모아야 할 때다.

 

박옥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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