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의 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충청남도 예산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려야 했다. 요즘처럼 청년실업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필자가 부모님과 함께 농촌생활을 하며 발령을 기다리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1년 이상을 기다려 발령을 받은 곳은 경기도 연천의 어느 시골학교였다. 300여 명의 아이들과 8명의 교직원으로 구성된 6학급의 소규모 학교에서 나의 새내기 교사생활은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교직생활이었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교실 안은 날마다 새로움으로 가득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기도 했다. 인정 많은 학부모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가족처럼 반가웠던 기억들이 새롭다. 시험점수 때문에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방학이 되면 가까운 임진강에 가서 물놀이도 하고, 산과 들로 나가 곤충채집도 하며 아이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나누는 기쁨이 대단했다. 가을 운동회가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학교로 모여든다. 동네잔치였다.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로 키우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로 기억된다. 3년 4개월 만에 인천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 나와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었던 기억들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는 추억이 되었다.
여전히 그때의 제자들을 만나면 참으로 자랑스럽기만 하다. 사실 여기서 1970년대 후반기에 필자가 근무했던 시골학교의 교실모습과 지금의 교실풍경을 비교하는 것이 별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를 전수하는 오늘의 경쟁교육은 분명 옳지 않다.
평화·사랑 넘쳤던 옛 시골 학교
교육본질에 대한 성찰을 다시금 해보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들과 교사들이 살아가야 할 오늘의 교실현실에 그들은 어떻게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더구나 가해학생 몇 명을 가려내어 처벌하고 추방하면 학교폭력은 사라질 것이란 착각을 하고 있는 정부의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이 시행됨에 따라, ‘폭력을 몰아내기 위한 수단이 폭력일 수 없다.
폭력을 이기는 힘은 끝내 평화와 사랑의 힘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의 심적 갈등이 얼마나 심할까. 썩은 상자는 내버려둔 채 눈에 보이는 썩은 사과 몇 개를 골라내는 데 초점을 맞추라는 정부대책 그것은 교육 본류가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경쟁교육 풍토 개선해야
교사가 아이들을 만나 사랑하는 일은 한 아이의 인격 성장을 다른 어느 이익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다. 그러기에 지금은 교사가 아이들의 삶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나서서 진정으로 도와주어야 할 때다.
교사와 아이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요, 신의 섭리다. ‘나는 우연히 이 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도 내가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 학교에 우연히 오게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곳에는 신뢰와 사랑, 존경이 싹틀 수 없다.
지난 2011년7월 노르웨이에서는 최악의 극우 테러 참사가 발생했다. 노르웨이의 옌스 스톨텐베르크 총리는 그 참사에 대한 대응책을 묻는 대중들에게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 그리고 더 많은 인간애”라고 말했다.
응징과 처벌이라는 단순 대응은 절대로 정답이 아니라는 신념이,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지구 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 노르웨이가 유지되는 근본이 되고 있음을 살펴야 하는 오늘이다. 우리의 답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사회가 진정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배움의 공간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학교폭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는 교육, 개인·사회·세계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청연 인천시 자원봉사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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