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열어도 티비를 봐도 심란하기 짝이 없는 소식들로 마음이 어지럽다.
지난 연말 한참을 아이들의 안전이 위험하다고 떠들던, 그래서 학교폭력은 꼭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은 신년맞이와 함께 정치권의 돈봉투 사건으로, 권력실세의 다이아몬드 발굴권과 그로 인한 부당이익으로, 그리고는 전직교수의 석궁사건과 법원의 연이은 미스테리한 판결들로 주의를 옮겨가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부정부패와 질서 파괴는 가히 총체적인 위기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욱이 재벌 2~3세의 빵집 논란까지를 더하고 보면, 우리 국민들의 권력 실세들과 정치권, 그리고 부유층과 심지어 사법권에 대한 불신의 수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총선이다. 그러다보니 여권도 야권도 서로 협동하려기보다는 상대의 허물을 어떻게 더 적나라하게 폭로하느냐에 혈안이 돼 있다. 심지어 법원이나 검찰 역시 영화 한 두 편으로 입은 타격을 만회하기가 영 쉬워 보이지 않는다. 날마다 공청회나 토론회를 연다고 해서 이미 허물어진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반 시민들은 국가라는 것이 우리를 위해 봉사하고 안전한 삶을 살도록 보호해 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이 같은 믿음이 근본부터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국민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
아이들은 학교에서 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대기업은 동네 상권까지 진출해 소시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정치권은 부패했으며, 사법권은 그들만의 정의를 위해 실체적 진실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총선이 가까워 올수록 이 같은 사회적 위기는 더욱 우리의 촉각을 곤두서게 만들 전망이다.
임진년이 겨우 두 달의 문턱을 넘고 있다. 벌써 이리도 시끄러운데 총선 후 대통령 선거 시까지 어떻게 지내야 할 지 심히 걱정이다.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일반 시민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권세가들은 모두 꼼수를 동원해 삶을 누려왔는데 나만 엄격한 법의 잣대 속에서 힘든 일상을 허우적거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갑자기 재작년에 법원에 전문가 의견서를 제출했던 어떤 사건이 기억났다. 증거물이라고는 백 원짜리 동전 열두 개뿐인 사건이었다. 이미 절도 전과가 있었던 피고인의 상습성 및 도벽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것이 재판부의 감정 요구사항이었다.
결국 피고인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고, 대면한 자리에서 수의를 입고 추레하게 앉아있던 피고인의 모습은 지금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과연 보통사람들의 이 같은 현실을 높디높은 분들이 상상이나 하고 계실지 의문이 든다. 기껏 동전 몇 푼을 훔칠 수밖에 없었던 피고인이나 그를 처벌해달라는 고소인이나…. 이들이 처한 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척박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은 당시 국민참여재판에 할당됐던 것이었다. 전문증인으로 법정에 참여하여 의견서에 대한 답변을 했을 때, 세 분의 판사들과 배심원들은 참으로 진지했었다.
기본 갖추는 것부터 시작하자
아무리 사소한 사건이더라도 피고인에게 적절한 정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찾으려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한편으로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어쩌면 당연하기도 한, ‘공정한’ 재판과정을 보고 나오려니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나와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을 갖추는 일이 또한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에 탄복하면서 법정을 나설 수 있었다.
법원이나 검찰을 포함해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 바로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기본을 갖추는 일, 바로 그것 인 것 같다.
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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