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무실을 꾸몄다. 말이 사무실이지 실은 한 평도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이 공간을 ‘트렁크 사무실’이라고 명명했다. 작고 은밀한 느낌이 꼭 오래되고 낡은 트렁크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어린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간 오빠는 자리가 잡히고 나자 낡고 큼직한 트렁크 하나를 국제우편으로 보냈다. 트렁크 안에는 입던 옷가지를 비롯해서 책, 그리고 신기한(!) 서양물건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를테면 당시로는 우리 형편에 듣도 보도 못했던 토마토 케첩이며 샴푸 그리고 느끼한 버터, 마요네즈, 초콜릿 따위, 미국생활의 상징성 아이콘을 맛뵈기로 한가득 채워 보낸 것이다. 그때 그 큼직한 트렁크가 내게는 영락없이 다락같이 보였다.
혼자 들어앉아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도 하고, 애들 몰래 쟁여놓은 곳감이며 다식 따위를 들킬까봐 맘졸이며 꺼내먹는 그런 은밀한 곳 말이다.
잠깐 여기서 토마토 케첩에 얽힌 삽화 한 토막을 소개하고 지나가자. 순도 높은 시골 토종 우리 어머니는 트렁크 속에 담겨 온 토마토 케첩이 당최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아마도 ‘서양 도마도주스 원액’일 거라는 재치 넘치는 판단을 하게 됐다.
마침 미국에서 뭔가가 왔다는 소식을 접한 참견쟁이 동네 여인네들, 반장마누라를 위시해, 하루종일 뭔가 얻어걸릴 것을 기대하며 동네를 뱅뱅 돈다고 해서 ‘뺑뺑이 엄니’라는 별호가 붙은 이까지 빠지지 않고 죄다 몰려왔다.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보니…
어쨌든 호기심과 기대감, 부러움과 시샘까지 넘실대는 표정으로 트렁크의 내용물을 응시하는 이 여성부대에 엄마는 약간 우쭐해 보이는 품새로 ‘서양도마도주스 원료’를 큼직한 사발에 찔끔 따라서 물은 넉넉히(!) 부은 후 사카린을 타서 대접하기에 이르렀다.
나도 한 모금 마셔보고 곧바로 부엌 개수대로 직행했지만, 그 정체불명의 이상하고도 야릇한 맛이라니! 그래도 순박한 시골 우리 동네 아줌니들은 “서양 것은 아무튼 이상하구먼” 하는 촌평과 함께 “먼디서 온 귀한 것 잘 대접 받았다”고 치하하며 돌아갔다.
각설하고, 사무실에는 내 보물 1호 노트북, 애플의 맥북에어가 책상 위에 모셔져 있다. 딸이 월급을 축내가며 전문가용이라고 사준 노트북이니 어찌 보물 1호로 추앙하지 않을 손가. 그리고 책상 앞에는 사무실 분위기로는 생뚱맞은 3면경이 펼쳐져 있다.
안방과 욕실 사이, 곁다리로 딸린 옷 방을 용도 변경해 사무실로 쓰기로 했다는 얘기다. 옷방에 마련된 화장대의 용도에 전전긍긍하던차 어느 날, 머릿속에서 전구가 반짝 켜졌다.
사무실! 집을 옮긴 후 사무실로 쓸 공간이 마땅치 않아 대충 식탁 위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곤 했는데 장소가 장소인지라 집중이 되지 않는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 발견
그런 상황에서 화장대 공간을 집중력 높이기에 안성마춤인 사무실로 낙점하게 된 것이다. 실은 이 글이 사무실에서 쓰는 제1호 작품이 되는 셈이다.
아! 사무실이 좋은 점 또 하나, 글 쓰는 외에 혼자 울 수도 있겠네. 사람이니까, 이따금 세상과 부딪히니까, 아무도 모르게 울고 싶을 때도 있을 것 아닌가. 마침 신문에서 울고 싶을 만큼 감동을 주는 사진 전시회 기사가 실렸다.
사라질 위기에 있던 솔섬을 사진으로 세상에 알려 그 섬을 살려낸 사진작가 마이클 케냐가 ‘철학하는 나무’라는 다소 난해한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고 있다며 설산의 한 풍경을 소개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러니 한 시선, 그는 눈 덮인 겨울 산에 설치된 쉰 개의 검은 울타리를 깊은 고요를 연주하는 침묵의 음표로 그려내고 있었다.
글을 마치고 나면 그의 사진전을 보러 갈 것이다. 그리고 고요와 적막, 외로움을 연주하는 무채색의 노래를 들으며 울어 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초대할 수 없는 작은 트렁크 사무실에서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행복하다. 행복은 큰 것이 아니고 작은 것이기 때문에.
신효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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